씨네21
검색안국진 (77기 독립영화워크숍 수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댓글부대" 감독)
저는 2003년에 61기 독립영화워크숍을 수료한 후 대학에서 연극영화과 학부교육을 받고 상업영화현장에서 한 작품의 경험을 쌓은 후, 얼마 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였습니다.
제가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치게 된 데에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작업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필연에 가까웠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영화교육을 거의 대부분 거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영화를 선택한다는 의미의 특수성에 비해 많은 영화과 학생들이 영화에 뜻을 품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두거나 전과나 복수전공을 합니다. 이미 졸업 전 부터 영화와 관계되지 않는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의 수도 상당합니다. 졸업을 위한 단 한편의 영화를 어쩔 수 없이 찍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이며 많은 학부를 거느려야하는 학교의 시스템에 의한 병폐 때문인지 제대로 영화를 만들어 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영화에 질려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려는 친구들조차 해를 거듭해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편수를 연출을 해도 객관적이고 신랄한 비판을 받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객관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좋은 교수진과 강사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와 자신과 영화관이 맞지 않다며 큰 도움이 될 만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귀를 닫아버리는 것도 많이 봐왔습니다. 교수진들 역시 "영화는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있어서 그런 논리로 학생들을 훈련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를 구분하려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취향 이상의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비로소 학생들 역시 영화를 교육받을 수 있는 태도가 만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과 시절 동안 학교 수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학생들과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해본 자와의 태도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상업영화현장에서 경험하는 영화 만들기와도 다른 지점입니다. 스텝으로서 일하며 눈으로 배우는 것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직접 연출을 하고 영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동시에 객관화 된 눈으로 영화의 문법을 이해하는 것을 익히려면 독립영화워크숍에서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공동작업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의 결과는 좋지 않겠고 학생들 역시 휴학을 불사할 정도의 고충을 토로할지 모르지만 최대한 저학년에 이런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경험하고 들었던 것은 학교자체가 학생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과를 떠나거나 휴학을 하거나 자퇴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화과의 특성상 수업의 난이도 조절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어차피 대부분이 고학년에 과를 떠나거나 영화과와 다른 취업준비를 합니다. 학부가 영화자체의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입학년도에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공동작업과 객관화를 위한 비판의 시간을 병행한 커리큘럼을 개설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러면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도 더욱 높아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입장에서 볼 때 독립영화워크숍의 공동작업이 "영화를 만든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동기들과 몇날 며칠을 회의한 끝에 결국엔 뭔가 찝찝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어야 하고 나의 회심의 컷을 동기의 연출력이 엉성하게 만들어버리고 내가 겨우 디렉팅한 배우의 연기가 동기의 촬영 실력으로 허접한 장면이 되어버리며, 어떤 실력 없는 동기는 거장 흉내를 내며 연출을 해서 영화 전체의 톤을 망쳐버리기도 하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 속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대화를 해도 통하지 않는 동기 때문에 성질만 나고.. 그러다 결국 어떤 동기에게는 인간적으로 질리기도 하고, 때문에 언성 높여서 싸우다가 결국 영화 자체를 싫어 해버리는 구성원도 생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결국 고생한 티만 역력한 상당히 조악한 수준으로 완성됩니다. 독립영화워크숍의 수료생들은 기수와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독립영화워크숍에서 영화를 경험하는 시간은 차라리 지옥에 가깝습니다. 영화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이 상당해서 누구라도 독립영화워크숍을 수료하는 그 순간 "영화를 계속 할 것인가, 그만 둘 것인가"라는 선택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다. "영화를 만든다."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대번에 그만둡니다. 지옥을 경험 했음에도 계속 영화를 찍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자기 객관성을 갖게 됩니다. 창작자가 자기 객관성을 갖는다는 것은 습득하기 어려운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큰 발전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독립영화워크숍에서 찍혀진 영화(실습작품)들의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독립영화워크숍 출신들이 수료하고 만들어내는 영화들의 수준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독립영화워크숍의 일련의 교육 과정들이 이러한 효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시 하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른 영화교육기관과는 굉장히 다른 지점입니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결과물이 전부인 작업입니다. 영화를 만드는데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로 어불성설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결과론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학생들에게 강제적인 요구를 하더라도 과정을 더욱 중요시 할리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이 중요시 되는 작업이 가능한 것은 독립영화워크숍에서는 상하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작품이 아닌, 단 한 작품을 위한 공동작업을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같이 개발하고 토론하고 공동연출, 공동촬영, 공동 제작을 하고 매번 서로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가지고 서로에 대한 비판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는 커리큘럼은 어쩔 수 없이 치열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질을 떨어트리기는 아주 적당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각자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되돌아보기에도 이만한 시스템이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독립영화워크숍과 대학교 영화과, 그리고 영화아카데미를 거치며 느낀 것은 독립영화워크숍이 영화를 교육받을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는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영화를 포기 하지 않고 긴 시간동안 버티며 꾸준히 영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영화워크숍의 짧고 지옥 같은 공동작업이 뿌리가 되어 주었던 덕분입니다.
독립영화워크숍의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끝까지 버텨내길 기원합니다.
□ 지난 20주년 독립영화워크숍 자료집에서 ‘입문과정 공동작업’에 관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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