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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영화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기회"
김미조 (“갈매기”감독/ 22년 들꽃영화제 신인감독상/ 21년 영화평론가협회 신인감독상/ 20년 전주영화제 한국장편경쟁 공동대상)
- 독립영화워크숍 입문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동작업에 관하여.
“아니다 싶을 때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그만둬라.”
독립영화워크숍 수업을 듣던 당시 공동작업 담당 선생님이 대뜸 저희를 보며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이상하게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독립영화워크숍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어디에선가 우연히 봤던 홍보지를 통해서 입니다. 마침 학부를 졸업할 때였던 터라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읽었던 것이 안국진 감독님의 <독립영화워크숍에서 공동작업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워크숍에 관한 설명회를 신청했습니다.
2016년이 거의 다 지나가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충무로 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큰 건물에 있던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설명회를 열었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처음 뵙게 된 담당 선생님의 뭔가 범상치 않은 아우라에 압도되었던 기억도 함께 납니다. 설명회 내용 중 입문과정을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가장 결정적인 말은 ‘자기 객관화’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객관화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 작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자기 객관화를 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저는 사범대학에 진학했다가 영화과를 복수전공하면서 영화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오기까지도 너무나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에 영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셋째 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배운다는 것이 좋아서 뛰어들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기만 했을 때는 극장이나 방 안 의자에 앉아 편하게 보기만 하면 됐었는데 막상 영화를 만들려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는 학기마다 연출자가 영화를 한 편씩 만드는 것이 주요 교육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가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이 맞는가에 대한 진지하게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영화과에 진학한 친구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막연히 영화가 좋아서 영화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에 치이고, 작품에 치이고,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에 치이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영화에 질려 다른 과로 전과를 하거나 졸업 후에는 영화가 아닌 다른 길로 갈 것을 결정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던지 영화를 계속하다가는 내 영혼은 물론 뼛속까지 모조리 다 갉아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힘들기만 하면 미련 없이 영화를 그만두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렇게 힘들면서도 영화를 완성해 냈을 때 느끼는 묘한 짜릿함과 희열이 영화를 그만두지 못하게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요란했던 영화과 생활을 마쳤지만 2년의 세월은 너무나 짧았고 앞으로의 길은 까마득했습니다. 영화를 계속하리라 마음먹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딜 가야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인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아 두서없이 마음만 요란하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때에 만난 것이 바로 독립영화워크숍입니다.
제가 독랍영화워크숍 입문과정의 공동작업을 통해 기대했던 바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학부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공동작업이라는 과정에 대한 경험. 둘째, 자기 객관화에 대한 성찰. 셋째, 앞으로 함께 영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얻는 것.
그리고 저는 독립영화워크숍에서 입문과정으로 공동작업에 2개월을 참여하며 이 세 가지를 모두 얻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2년간의 학부 생활을 통해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연출자를 중심으로 한 품앗이 형태의 작업 방식이었기 때문에 공동작업을 통해서 저라는 사람이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 영화라는 작업이 내게 정말로 맞는 것인가, 타인 속에 있는 나라는 작업자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들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런 공동작업은 나의 또 다른 면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영화라는 작업이 가진 아주 껄끄럽고 거북스러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독립영화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저 역시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으며 과정 자체 역시 온통 실수투성이에 엉터리였습니다. 뭔가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척,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척하려 무던히도 애썼지만 공동작업 속에서 내실 없는 저의 모습은 노골적일 정도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에 바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차츰 제가 저질렀던 실수가 무엇이었고 제게 어떤 면이 부족 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비로소 자기 객관화가 되면 그제야 반성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10 만큼의 실수를 했다면 이번에는 9 만큼의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지만 이 더디고 지난한 과정이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쿨 하지도 않아 내 옆에서 끊임없이 질척댑니다. 그런 점에서 독립영화워크숍의 입문과정은 어쩌면 우리에게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바로, 영화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기회.
하지만 그 만만치 않은, 질린다 싶은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가슴을 퍽퍽 치는 일을 반복하는, 아주 잠시 사람이 싫어지는 때가 생기는. 그 끔찍한 과정을 거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영화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영화 라는 공동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아주 쓰디쓴 배움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배웠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눈물 없이는 설명 못 할 그 경험들은 분명 앞으로의 작업에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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