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검색(문지원/ 독립영화워크숍 67기/ <증인> 시나리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갖은 노력을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자퇴에 성공했다.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르게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 후 하자작업장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 4년간 ‘다르게 배우며’ 2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자퇴생이자 대안학교 학생으로서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들은 여러 영화제들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그 좋은 반응이 내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이 신선해서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안학교를 졸업하며, 나는 영화 만들기를 배우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 첫 단추로 ‘독립영화협의회 16mm 필름 제작 워크숍’을 선택한 건, 독립영화워크숍이 하자작업장학교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하자작업장학교는 이른바 ‘힙(hip)’한 곳이었다. 젊은 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 화장실 변기에까지 독특한 디자인이 스며있는 곳, 디지털 영상 장비들을 반짝이게 갖추어놓고 “뭐든지 만들어봐!”라고 격려하는 곳이었다. 반면 우리의 독립영화워크숍은 이른바 ‘트렌드’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공개 설명회에 갔더니, 손때로 가득한 창고 같은 공간에 방금 막 산에서 내려온 것 같은 선생님이 나타나 “누구나 영화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영화를 할 수는 없다”며, 이 워크숍의 목표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게 해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선생님의 발음은 너무나 불친절하여 나는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그의 이름이 ‘O희섭’인지 ‘O희섭’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지만, “영화는 힘들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살 길을 찾아라,” “이 워크숍을 수료한다고 해서 영화에 대해 뭔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어찌 보면 악담에 가까운 설명회의 메시지만큼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매력으로 다가왔다. ‘영화’와 ‘영화 수업’에 대해서 저토록 정색하는, O 선생님의 고지식한 태도가 오히려 건강해보였고, 이런 철학을 가진 곳에서 한번쯤 ‘다르게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얼마 뒤, 나는 노란 우비를 맞춰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비 내리는 관악산에 올라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독립영화워크숍 67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배운 대부분의 것들이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강사였던 권경원 감독님과 김보람 촬영감독님은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가르쳐주셨고, 나 역시 이 강의들을 마치 신이 내려주는 말씀처럼 소중하게 받아 적었다.
O 선생님이 알려주신, 촬영 장비(16mm 필름 카메라 세트)를 들고 이동하는 법, 지하철 타는 법, 차에 싣는 법, 남의 집을 빌려서 촬영할 때의 유의사항 등은 이후 내가 또 다른 단편영화들을 만들 때마다 잊지 않고 떠올리는 지침이 되었다. 공식적인 커리큘럼은 아니었지만, O 선생님이 내가 이전에 찍은 영화를 샷 바이 샷으로 분석해주신 것도 내겐 정말 큰 배움이었다. 쇼트 구성을 어떻게 했어야 더 설득력 있는 영화가 되었을지 한참을 설명하신 후, “되게 못 만들었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네.”라고 평하셨던 것을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로 듣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립영화워크숍은 공동 작업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기수 구성원들이 시나리오 한 편을 다수결로 뽑은 뒤, 씬 별로 나누어 연출과 촬영을 돌아가며 하는 형태다. 나 역시 하루는 내가 쓴 시나리오가 뽑혀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날은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 감독들에 의해 같은 시나리오가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는지에 놀라기도 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기수 구성원들은 하나 같이 욕심도 많고 고집도 셌다. 그러다보니 제작 과정 전체가 치열하고 짜증나면서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말로 ‘내가 맞니, 네가 맞니’ 하다가, 나중에는 근거를 가지고 제대로 싸우려고 각자 연출할 부분을 콘티로 만든 뒤 다시 ‘내가 맞니, 네가 맞니’ 했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다 지나도록 합의하지 못한 부분들도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해보려고 모두들 애를 썼다. 잘 해보려는 마음들이 부딪혀 서로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서로가 한 뼘이라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67기 구성원들은 8분 20초 길이의 <오! 헤피데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독립영화워크숍에서 만든 영화는 공동연출이라 완성도가 높을 수 없다며 호적에 올리기 부끄러운 자식 취급하는 경우가 많던데, 사실 나는 <오! 헤피데이>가 꽤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맞는 생일도 상상력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영화는, 비 오는 날 관악산 정상에서 막걸리를 벌컥거렸던 사람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산뜻하고 예쁘다. 이미 디지털로 영화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던 2004년에 16mm 필름으로 담아낸 서울 곳곳의 풍경도 독특하고 말이다.
독립영화워크숍을 수료한 후, 나는 영화 ‘다르게 배우기’를 계속해나갔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아카데미를 거쳐, 미국 The New School University의 2년 과정 필름제작코스를 수료했다. 그러는 동안 5편의 단편영화를 더 만들었고 장편시나리오도 썼다. 그 시나리오 중 하나는 <증인>이라는 제목으로 내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나의 이 여정에 대해서 들으신 O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런(일반 대학의 영화과를 졸업하거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혹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하고는 다르잖아. 네가 나온 하자라든지 독협도 그렇고. 그런 데랑은 다르잖아.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야지. 그런 사람들하고 다르게 너만 가진 게 뭐가 있겠지.” 저 말씀을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이루는 다양성의 힘을 이해하는 O 선생님에게 영화를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독립영화워크숍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려는 노력보다는 영화 만들기란 무엇이고, 영화 수업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철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세상에는 대학의 이름을 달고 깊이 있게 영화를 가르치는 곳들도 필요하고, ‘4주면 당신도 영화감독!’같은 식의 문화센터 풍 교육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영화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영화를 할 수는 없다’는 구호를 33년간 외치며, 집단지성을 활용한 공동 작업 방식으로만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독립영화워크숍도 여전히 필요하다. 정부와 개인들의 도움으로 이러한 영화 교육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야 하지 않을까? 나도 이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 지난 독립영화워크숍 33주년을 맞이하여 응원하는 의미에서 보내온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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