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의 갈망 (1997)
|85분|드라마
아이리스의 갈망
*모녀 관계,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해서 역사를 서술해온 오이디푸스 신화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맞대응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오랜 화두다. 여기에다가 항상 남성의 타자나 거울 이미지로만 설명되는 데서 벗어나 여성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여성의 시각과 목소리로 재현해내고자 하는 노력이 결합된 것이 바로 (아이리스의 갈망)이다.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항상 언니에게 그 사랑을 빼앗긴다고 여기던 아이리스는 갑자기 어머니가 죽자, 쓰라린 통과의례를 치르게 된다. 직장도 때려치우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그녀는 여러 남자들과의 감정없고 거친 섹스로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자기파괴적인 삶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오히려 그녀를 소외시키고, 남자들과의 만남은 더욱더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돼간다. 한 정신과 여의사가 쓴 (성모, 어머니, 창녀)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감독은 남성들과는 달리 항상 고통과 분노를 내면화하는 것으로만 그려진 여성의 모습을 과감하게 수정한다. 싸우고 돈을 훔치고 섹스하는 그녀의 행위가 자아상실로 전달된다면, 죽은 어머니의 모피코트를 입고 가발을 쓴 채로 밤거리를 헤매는 그녀의 모 습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한 여성의 미숙하지만 서글픈 가면극으로 비친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이리스와 언니 로즈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대고 상처를 입힌다. 가장 친한 여자친구는 아이리스가 차버린 남자친구의 새 애인이 되어 등장한다. 이런 식의 질시와 경쟁 관계가 모녀 관계라는 다른 축과 중첩되면서 영화의 주제는 확대돼 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빛나는 부분은 감각적이면서도 정교한 스타일이다. 느린 화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핸드헬드 카메라가 그녀의 절망적 심리에 대한 탐사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면, 16mm필름으로 찍힌 거친 톤의 화면과 밤장면들의 화려한 색채 그리고 자주 삐딱해지는 카메라의 각도는 한 여성의 성적 욕망과 피학증을 낯설고 불편한 위치에서 지켜보도록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때로는 힘있는 고요함 속에서, 때로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속도감 속에서 아이리스의 힘겹고 고통스러운 성장궤도를 따라가게 된다. 아이리스가 언니와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은 새로 태어난 언니의 아기와 지금은 부재하는 어머니를 통해 두 자매가 하나의뿌리를 그리고 여성들간의 연대와 교감을 확인하는 순간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아이리스가 자신의 소망대로 무대에 서서 (원래 그렇듯이 다시 혼자가 되어)( Alone Again Naturally)를 노래부를 때, 그녀의 모습이 결코 외로워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왕가위 식의 현란한 스타일에다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에서와 같은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더해진 영화, 영국영화다운 리얼리즘적 터치로 페미니즘적인 주제를 도발적으로 풀어나가는 (아이리스의 갈망)은 성공적인 페미니즘 영화의 90년대식 버전임에 틀림없다. 주유신/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씨네21 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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