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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1926)
90분 드라마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는 러시아 혁명문학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프세볼로트 푸도프킨(1893~1953)의 <어머니>는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무성영화의 걸작이다. <전함 포템킨>이 시종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주는 숨가쁜 영화라면, <어머니>는 서정을 통해 격정을 쌓아가는 질긴 밧줄과 같은 영화이다.
푸도프킨과 시나리오 작가 자르히는 고리키를 영화로 옮기면서 원작의 이차적인 이야기는 과감히 버리고 등장인물의 수를 줄이는 대신 날카로운 갈등을 중심으로 한 극적 구조를 부각시켰다. 그들의 목적은 가난하고 무식한 노동자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혁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리키의 깊이와 넓이를 희생시키는 것이었지만 무성영화로서 극적·혁명적 효과를 달성하는 데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의식적으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술집과 집, 공장의 파업을 오가는 도입부의 알레그로와 아버지 장례식의 아다지오, 수색·배반·체포·재판·감옥생활을 그리는 알레그로와 해방·시위·폭동·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나가는 격렬한 프레스토가 차례로 연주된다. 이 계산에 따라 푸도프킨의 <어머니>는 보는 이의 감정곡선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뛰어난 운율의 영화로, 성격과 사건, 극을 하나로 엮어나가는 탁월한 비극으로 태어나게 된다.
에이젠슈테인, 도브젠코와 더불어 소련 무성영화시대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푸도프킨은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한 과학도였으며, 시·회화·연극·연출 등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재기 넘치는 예술가였다. 그는 러시아 몽타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쿨레쇼프의 수제자로 소련 영화의 중심으로 진입했는데, 엑센트릭한 단편 <체스 열기>와 과학영화 <뇌의 역학>에 이어 만든 <어머니>는 사실상 그의 첫 장편이었다.
<어머니>에는 이런 그의 예술적 역정이 창조적으로 담겨 있다. 예컨대 재판장면은 톨스토이의 「부활」의 한 장면을 재창조한 것이며, 감옥에서 원운동을 하는 장면은 반 고흐의 ‘감옥 안마당’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타마리나가 연기한 어머니의 형상에는 드가와 청색시대의 피카소와 콜비츠의 판화가 응축되어 있다. 그 자신 배우이기도 했던 푸도프킨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사실주의 연기 전통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옴으로써 뛰어난 심리적·서정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어머니>를 세계 영화사의 걸작으로 만든 기본 요인은 탁월한 몽타주에 있다. 서정과 서사, 배우의 연기와 편집, 세부와 전체, 심리와 카메라의 시선, 긴 흐름과 짧은 단절을 적절히 교차·병치·조합하는 그의 몽타주는 에이젠슈테인의 그것과는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흔히 그의 몽타주이론을 연계의 몽타주라고 단순화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분인 시위와 학살, 투쟁의 장면은 ‘오데사 계단’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사실 그와 에이젠슈테인의 본질적 차이는 후자가 몽타주를 영화의 방법론으로 접근했다면, 그는 서술의 기술로 간주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차이가 결과적으로 세계 영화사의 평가를 가르고 말았다. 그의 영화는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전범으로 평가받았으나, 정작 그 자신은 발성영화가 도입된 뒤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이 아이러니는 물론 스탈린주의의 억압 탓도 있지만 기술적 실험과 타협을 맞바꾸고자 했던 그의 쇠약한 예술혼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이정하 영화평론가,<세계 영화 100>(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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