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성 단편 콜렉션 1 (2010)
청소년 관람불가|57분|단편 영화
최진성 단편 콜렉션 1
히치하이킹 : 다시 쓰는 연출의 변, 2010년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가 내 영화 인생의 시작을 알렸다면, <히치하이킹>은 내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그들만의 월드컵>, <행복한 청소년 건강한 대한민국> 등의 다큐멘터리로 영화를 시작해서, <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로 나름 ‘크로스 오버’를 시도하다가, 이에 이어서 <히치하이킹>로 첫 번째 극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지금은 일약 스타가 된 이선균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바람난 가족>의 인상적인 배우였던 백정림이 여자2를 맡았다. 극영화로서의 첫 작품이지만, 나름 호기있게 실험해 보고자 했던 것은 환타지와 현실의 경계, 뮤지컬과 극영화의 경계, 카메라와 인물의 경계 등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이 모호함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 해주었고,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수상복도 꽤 많았던 영화. 이전에 디지털 다큐멘터리만 찍다가, 35미리 필름으로 극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돈도 많이 깨지고 이래저래 시행착오도 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속도로 1월초에 촬영을 시작해서 2월말에 시사회를 가질 만큼 빨리 작업했던 영화다. 원작으로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게임>을 크레딧에 명기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원작과 전혀 다른, 초반의 아이디어만 가져온 처지라서 괜히 명기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의 하나가 이전에 ‘정치적’인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다가 갑자기 멜로 극영화로 선회하며 ‘변한’ 나에 대한 질문이 많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생각은 내가 만드는 모든 다큐멘터리나 극영화, 그것이 멜로 영화일지라도 모든 게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에서는 같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정치적이니까. 사적인 영역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 바로 사랑과 연애고. 이렇게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는 의미에서, 정치 영화에서 비정치 영화로 선회했다는 질문은 우문이라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 입장에선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나 <히치하이킹>이나 ‘최진성 영화’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조금씩 색깔과 포지셔닝을 달리한 작품들일 뿐,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변화’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나아가서는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한편으론 적극적으로 그 경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나의 영화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전의 다큐멘터리가 내가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면, <히치하이킹>은 다소 ‘나’에게 관심이 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주인공이 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연애를 통해 남/녀의 연애 관계에 대한 나의 (절망적인) 관심이 부쩍 많아지면서 만들게 된 영화였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나’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작품인데, 이렇게 영화를 통한 자아에 대한 성찰은 같은 해에 만든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작품에서 본격화 된다. 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 다시 쓰는 연출의 변, 2010년 2000년대 초반이라는 비슷한 시기에 독립영화를 막 시작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의미 있게 놀아보자는 의도로 기획된 ‘옴니버스 프로젝트 <제국>’의 한 에피소드다. 지금은 스타 감독들이 된 윤성호나, 김곡김선 들을 비롯한 7팀이 함께한 프로젝트.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총괄프로듀서를 담당하기도 했었다. 당시 우리는 네그리와 하트가 쓴 <제국>이라는 책을 주 1회씩 세미나도 하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학구적이면서도, 진지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라크 전쟁이 났고, 우리는 세미나는 팽개치고 냅다 시청이나 국회 앞을 전전하며 세미나 보다는 반전집회에 더 열을 올렸었다. 이라크 전쟁 발발로 인해서 나의 에피소드는 이라크 전에 반대하는 ‘반전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마스터플랜의 ONESUN이 ‘앗쌀람 알라이쿰’이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출연해 주었다. <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부시뿐만 아니라, 파병국가인 한국/노무현과 역시나 독재세력인 이라크/후세인 정권, 여기에 곁다리로 핵무기 블라블라를 해대던 북조선/김정일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미국이 제일 ‘악의 축’이긴 하지만, 미국만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악의 축’을 중심으로 그에 기생하거나, 혹은 그에 반동적으로 기생하는 권력들 모두가 전세계 민중들의 평화를 해치는 반평화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혼재된 이 뮤직비디오를 기점으로 나의 필모그래피는 2004년부터 극영화로 넘어가기 시작하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서 극영화로 장르를 옮겨가는 시기의 ‘다리’가 되었던 작품이다. 뮤비에서 부시는 윤성호가, 노무현은 김선이 가면을 쓰고 연기해 주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 다시 쓰는 연출의 변, 2010년 2004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뜨거웠던 한 해였다. <히치하이킹>, <김추자> 라는 두 편의 극영화를 만들고, 바로 이어서 국가보안법철폐국민연대의 제안으로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철폐 옴니버스 프로젝트’를 연출하게 된 것이다. 6명의 감독이 함께한 이 옴니버스에서 나는 ‘나’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만들게 되는데, 이전에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들을 성찰하는 동시에 차별이 되는 지점에서 작품을 만들고자 이러한 전략을 썼다. 물론 이전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은연 중에 ‘나’가 등장하거나, ‘나’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객관적인 ‘척’ 하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다분히 명시적으로 ‘주관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었었는데,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아예 주인공을 ‘나’로 하는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할 수 있다면 <나>를 잡으시오!’. 짧은 시간에 만든 작품이지만, 이래저래 ‘소심한 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속 나의 포지셔닝에 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나의 다큐멘터리들이 왠지 모르게 ‘쎈 나’가 작품 뒤에 다소 숨어있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소심한 나’가 전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성찰의 계기가 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 대한 고민은 이후에 만든 작품인 <에로틱 번뇌 보이>에서 좀 더 심화된다. 이 작품의 촬영을 해 준 친구는 촬영감독 장태원이었는데, 태원이는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수년 전 고인이 된 친구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촬영을 하는 녀석이 등장해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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