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필리핀의 한 시골 마을에 나나 루싱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파가 외롭게 살고 있다. 그녀의 하루는 홀로 하는 식사에서 시작되어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저녁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독교 방송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고독한 일상의 반복이다. 그녀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지만, 그들은 그녀를 거의 찾지 않는다. 루벤은 어머니 소유의 농장을 지키고 있지만, 어머니와 대화를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 군인인 페르난도는 이따금씩 들릴 뿐이다. 광부로 일하는 로날도는 가끔씩 전화로 안부만을 묻는다. 오스카는 마치 예수처럼 황무지에서 제자들을 이끌다가 이따금씩 그녀를 찾는다. 그리고 별다른 직업 없이 어머니의 재산만을 노리는 아들 알베르토는 자신의 애인을 간병인으로 위장하여 어머니 곁에 붙여둔다. 나나 루싱의 조용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이런 아들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악마는 어떤 모습으로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는가? 메즈 데 구즈만 감독의 영화 <디아블로>는 종교적 삶을 사는 한 노파와 그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