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금으로 물든 저녁>의 내러티브를 정연하게 요약하기는 난망하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제목을 딴 이 영화는 터키 아나톨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두 개의 해와 세 개의 달이 뜨는 이 마을에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는 체말에게는 벽을 뚫고 들어가고 공간을 투시하는 등의 신묘한 능력이 있다. 신비로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진 체말은 야세민을 만나 동반 음독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도 하지만 체말은 야세민에게 큰 상처를 준다. 초월적인 묘사와 신비주의로 점철된 과감한 생략과 환상이미지, 꿈과 상상이 경계 없이 섞이는 몽상을 통해 오누르 윈뤼 감독은 비극적인 인간사를 위무하는 시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금으로 물든 저녁>은 심금을 울리는 음악과 멜랑콜리한 정서, 최상급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흑백 촬영으로 ‘소네트’의 시각화라고 할 만한 경지에 도달한다. (장병원)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