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그 6일의 기록 (1997)
12세이상관람가|74분|다큐멘터리
명성, 그 6일의 기록
1987년, 한국현대사의 한 정점을 이루며 소용돌이쳤던 민주화의 물결로 출렁이던 투쟁의 날들, 그때를 우리는 6월항쟁이라 부른다. 때때로 아련 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듯 술자리의 안줏감이나 무용담으로 회자되기도 하고, 오늘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6월 항쟁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뚜렷한 성과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사회 역사적 평가에는 약간의 편차가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은 6월항쟁, 그중에서도 전면적인 싸움의 불씨를 당긴 "6?0", 6월10일부터 시작된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담은 기록이다.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여오던 시위에 불을 지핀 사건은 바로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 시위는 힘을 더해갔고 6월10일 밤 일군의 시위대는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밀려들어 간다. 이로부터 5박6일 동안 명동성당은 전국민의 투쟁열기를 집중시키는 "성지"가 되었다. 어떤 사전 계획도 없이 "느 닷없이" 농성을 하게 된 이들은 "고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구두닦이에서 비구니까지, 성별과 나이, 계층과 이념을 초월"해 "호헌철폐, 독 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하나로 모았다. 결국 6일 만에 자진해산 형식으로 농성은 마무리됐지만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폭발력은 결국 6?9선언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해산과정을 둘 러싼 농성에 대한 평가는 결과론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따라서 6월항쟁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 으로 되짚어보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총련 사태에서 이어진 "신공안정국" 분위기, 멀지 않은 대통령선거 등 현재의 사회 정치적 상황이 간단치 않은 대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 학생, 노동자 등 당시 농성단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명동성당 신부, 오갈 데가 없어 명동성당에서 천막을 치고 살다가 졸지에 농성지원단 구실을 했던 상계동 철거 민들, 당시 "국민운동본부" 관계자 등의 생생한 증언과 역사적 현장을 담은 자료화면으로 그날의 함성을 전한다. 해산을 둘러싼 공방과 정치적 상황이 입체감을 가지고 있으나 평면적인 내레이션이 흠이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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