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2009)
|60분|드라마
추노
불과 몇 백년 전, 화폐가치로 계산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던 이들은 유사시엔 사고 파는 것은 물론, 선물로 주기도 했고, 버릴 수도 있었다. 물건과 딱히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던 그들의 수는 조선 시대 초기를 지나 폭발하더니 급기야 임진왜란 직후인 1609년. 한반도 전체 인구의 47퍼센트, 한양 전체 인구 53퍼센트까지 육박하게 된다. 당시 양반들과 평민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이니 자잣거리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수인 셈이다.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 되는 세상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의 삶에서 희망이나 꿈, 전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그런 세상을? 이상되는 이들의 사람답게 살고픈 바람이 오직 ‘도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 집권하고 있는 세력이 어디인지 왕이 어떤 후궁의 아이를 선택해 후계자를 삼으려 하는지 경쟁하는 또 다른 아이와 집안이 어디이며 어떤 암투가 벌어지는지가 과연 자신들의 삶의 지침을 돌려놓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을까? 혹은 양반들이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어난 영웅이 나타났다한들 그저 막연히 자신들의 산산스러운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일 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었을까? 이런 세상의 모숩이 극에 달했던 때가 드라마 <추노>가 그리려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던 절반 이상의 사람들 중에는 한 때 노비였지만 도망쳐 인간답게 살려는 이가 있고 지옥같은 저잣거리에서 스스로의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 노비들을 잡아들이며 맨몸으로 분투하는 이가 있고 노비로 전락해서도 세상을 향한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버리지 않으려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절박한 입장이 서로의 목을 겨누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곤 했었을 터이다. 그 사연 위에 드라마 <추노>의 이야기는 씌여진다. 만약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각자의 얼굴을 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저잣거리를 살아가는 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화폐가치가 인생의 값어치로 손쉽게 매겨지고 ‘88만원 세대’ 라던가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구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재의 모순을 그 시대와 등가로 놓을 순 없다 하더라도 맨몸으로 부딪혀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하여 드라마 <추노>는 왕가와 중신들이라는 날줄과 씨줄이 어지럽게 얽힌 ‘궁중사극’도, 어느 시대에 갖다 놓아도 특출날 수 밖에 없는 비범한 재주와 포부를 가진 개인들의 ‘영웅사극’ 도, 모두를 에둘러 시대의 모순을 맨몸으로 부딪혀나갔던 조선 상놈들 이갸기 ‘길바닥 사극’ 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안에서, 도달할 수 없는 각자의 절박한 바람들이 어떻게 좌절해 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좌절해가면서도 어떻게 모여 역사가 되어 가는지를 보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2010년 지금 ‘도망노비를 쫓는’(推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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