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너의 새로운 기타 스트로크
2022-05-26
글 : 윤덕원 (가수)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던 날, 문득 생각이 나서 기타 숍에 들렀다. 기타를 좀 보면 좋겠는데 하고 오래 생각해왔었는데 막상 갈 일이 좀체 생기지 않았다. 자주 가던 기타 숍이 이사했는데, 이사한 위치가 마침 일을 마치고 들어가는 경로에 있었다. 익숙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서 낯선 골목으로 들어갔다. 기타로 가득한 악기점에서는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나무로 된 기타들을 위해서 습도와 온도가 잘 맞춰진 까닭에 생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사람보다는 기타를 위한 공간이어서인지 마냥 편안하기보다는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음악을 일로 하고 무대에서 연주하는 일이 익숙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악기를 사러 가는 일은 어색하다. 꽤 좋은 악기들은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악기는 비교적 중고 구매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신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적다. 프로 연주자라면 악기점에서 멋지게 기타 들고 연주를 휘리릭 해본 다음에 ‘좋은데요?’ 하고 바로 구매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연주를 주로 하는 나는 직원이 안내하는 새 기타 앞에서 어색하게 뚝딱거리고 있을 뿐이다. 성격상 이것저것 마음 편하게 치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평소 도구에 대해서라면 좋은 것을 쓰면 좋지만 굳이 과한 것을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기타는 아니지만 최근에 구입한 악기들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살 때는 기분이 좋지만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방치해둔 악기들은 급격히 나이가 들어간다. 특히 기타는 줄을 잘 조절해놓지 않으면 조금만 습도나 온도가 맞지 않아도 엉망이 되기 쉽다.

그럼에도 새로운 악기가 있다면 새롭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다양한 악기가 있는 쪽이 좋은 것도 맞다. 같은 코드라고 해도 어떤 악기의 어떤 포지션으로 연주하는지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 코드가 같다고 해서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곡을 만들 때 꼭 들어갔으면 하는 음의 느낌은 그때 그 악기를 그런 방식으로 연주했을 때 소리나던 방식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기타로 만들기 시작한 노래와 건반으로 만들기 시작한 래가 꽤 다르고, 흥얼거리면서 만들었던 노래가 또 다르다.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 노래들은 뭔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시작한다면 새로운 것이 나올 거라 기대하게 되는 것도 있다.‘이번 앨범은 빈티지한 옛 악기의 소리를 살려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연주할 수 없었던 음악을 새로 배운 악기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뮤지션 인터뷰가 이제는 더 많이 공감이 된다.

이번에 구입한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다. 정확히 말하면 그중에서도 표준적인 모양을 가진 드레드넛 바디 기타인데, 가장 흔하게 쓰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OM바디라고 불리는 조금 작은 모양의 기타를 선호해왔다. 가지고 있는 것도 다 그 종류다. 다른 이유는 없는데 일단 모양이 예쁘고 부피가 조금 작은 편이기 때문에 연주할 때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타 줄을 피크나 손가락으로 크게 쓸어내리며 연주하는 스트로크 주법을 할 때 소리의 풍부함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연주에 한계도 느꼈기 때문에 언젠가는 드레드넛 바디의 기타를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늘이 될지는 몰랐지만.

너무 비싸지 않은, 그렇지만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을 법한 중간 가격대로 몇대의 기타를 연주해보았다. 이 기타는 이런 소리가, 저 기타는 저런 소리가 매력이 있었다. 이제까지의 취향에 맞는 기타의 연장선으로 선택할 것인가, 이제껏 없던 소리를 하나 더 추가하느냐 하는 고민 끝에 새로운 느낌의 기타를 구입했다. 평소의 쇼핑 습관에 비하면 아주 빠르게 결정한 것 같은데, 또 막상 그전에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럴 수도 있다. 매번 구입하기 전에 비교하고 검토해보는 것은 언제나 부족한 느낌이다. 악기의 장점과 단점은 실제 연주하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보통 그 과정에서 그 악기와 사랑에 빠지는지 여부가 앞으로 얼마나 그 악기를 많이 연주할지에 영향을 준다. 단점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다 좋은데 이상하게 손이 덜 가기도 한다.

며칠 동안 새 기타로 기본 코드만 연주해보았다. 아직은 연주하면 할수록 즐거움이 커지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많이 연주하고, 새로운 곡을 만드는 데도 쓰이게 될 것 같다. 어쿠스틱 기타는 정말 좋은 악기다. 어렵고 멋진 연주도 좋지만 간단한 연주를 할 때도 기분이 좋아진다. 텍을 아직 떼지 않은 새 기타를 연주하는 즐거움을 좀더 길게 누리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설렘을 주는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너의 기타 스트로크> _캐비닛 싱얼롱스

너의 기타 스트로크는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해 우연히 열어본 현관의 편지함처럼

너의 기타 스트로크는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창문을 활짝 열어둔 일요일처럼

헝클어진 머리, 졸린 듯한 눈빛, 오늘밤 만들어줄 너의 노래가 나는 궁금해

너의 기타 스트로크는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해 우연히 열어본 현관의 편지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