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호라시오 말도나도 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 회장·아르헨티나감독조합 사무총장 인터뷰
2022-05-26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공정한 보상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이 모여 창작자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AVACI)의 첫 세계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 OTT 플랫폼의 대두로 저작권의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지만 감독, 작가들이 원하는 내용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공정한 보상(Fair Remuneration)이다. 극장이든 넷플릭스든 TV든, 법에 창작자들의 저작권과 경제적 이익이 명시되어 있으면 누구도 재판에 가지 않고 협의를 볼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콘텐츠가 활발히 유통되는 문화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박찬욱 같은 유명 감독들조차 이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다 산업 규모가 작은 국가의 창작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려면 한국 저작권 인식과 법 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

- 아르헨티나감독조합(DAC) 사무국장으로 2004년 국내 저작권법 개정을 이끌어 창작자 보호 법제화에 성공한 선례를 만들었다. 이 움직임에 콜롬비아, 칠레, 우루과이 등이 동참했고 최근 브라질도 법 개정을 앞두고 있어 중남미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 저작물의 부가적 이용에 공정한 보상이 당연하다는 개념을 유럽 동료들에게 수혈받았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먼저 법제화된 개념이다. 아르헨티나는 1935년에 저작권법이 제정되었고 이때부터 시나리오작가들을 위한 법률은 마련됐지만 감독의 권리가 명시된 조항은 없었다. 2002년부터 국회에 가서 감독들에게도 공정한 보상을 요구해 2년 만에 법 개정에 성공했다. 1958년 설립된 아르헨티나감독조합은 단순 노조의 기능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저작권 관리 단체로서도 강력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아르헨티나 감독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타국 감독들의 작품이 아르헨티나에서 부가적으로 이용될 때 그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그 권한을 대변하고 관리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저작권료 신탁 기관으로서 수금과 분배도 직접 한다.

- 현행 국내 저작권법 제100조 1항은 “영화 제작에 협력한 모든 사람의 저작재산권은 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라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TV에서 방영되어도 저작권료를 받을 권한이 없고, 해외 상영에 따른 저작권료의 경우 해외 신탁 기관이 책정해둔 금액을 송금받을 데가 없어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총회에서 한국 창작자들에게 중점적으로 제언할 내용은 무엇인가.

=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노조협회가 아닌 국제적인 신탁 관리 단체로서 진화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변화를 정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베른협약(1886년 스위스 베른에서 최초 체결되어 전세계적으로 수차례 개정된 저작권 보호에 관한 기본적 국제조약.-편집자)에 가입한 국가다. 따라서 감독과 작가에게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의 권한이 있음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이 개념을 반영한 국내법의 개정 과정이 필요한데, 당장 생활이 힘든 창작자들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고되고 어려운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부디 관심을 늦추지 말기를 당부한다. 또 유념해주길 부탁하는 것은 감독, 작가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절대로 제작자, 투자자들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이 지불한 상영료, 수신료 등에 근거해 정당한 보수를 받자는 것, 그것뿐이며 이 보상금은 영상물을 공개하는 배급사와 방송국, 국제적인 OTT 플랫폼과 미디어들의 부담이다.

- 아르헨티나 영상물 업계에서 실제로 경험한 변화의 사례를 들려준다면.

= 공정한 보상을 받는 정도만으로도 감독과 작가들의 생활 수준은 크게 개선되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과도하게 고통받는 일이 줄어들면 더 좋은 영화를 더 자주 만들 수 있다. 또 신탁법인이 저작권료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수금 금액의 일부를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기업과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아주 미세한 지출에 불과하지만 감독, 작가들에게는 인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 감독, 작가,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이후 공정한 보상 투쟁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 20대 중반이었던 1990년 무렵에 미국 LA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당시 미국감독조합(DGA)을 방문하게 됐다. 엄청나게 큰 빌딩에서 대기업처럼 조직화해 운영되고 있었다. 그때 로비에서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우연히 마주쳤다.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동료 창작자들의 기본권을 위해 조합 운영에도 힘을 보태는 모습이 당시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귀국해서 2002년에 아르헨티나감독조합 운영위원회로 초대를 받았을 때, 어쩌면 감독들의 기본 권리를 위해 힘쓰는 일이야말로 내 인생의 사명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국회에 가서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만나 공정한 보상 문제를 역설했다. 어떤 논의들이 오갔나.

= 현재 한국에서 저작권법 개정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들은 영상물 업계의 특수성도 다각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한국 감독들이 매우 지난한 싸움을 해온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법 개정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란 희망을 봤다. AVACI가 대한민국 감독들을 계속 서포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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