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서래의 마지막 선택을 보고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결단의 놀라움에 대해 말하기 위해 글을 썼다.
누가 뭐래도 <헤어질 결심>은 언어의 영화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을 빼고는 도저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작은 하나의 단어다. “마침내”. 이 단어가 등장한 순간부터 영화의 말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남편이 ‘마침내’ 죽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결국 죽고 말았다는 안타까움을 서투르게 표현한 것인가? 기다린 결과가 도래했다는 시원함을 저도 모르게 발설한 것일까? 사극으로 한국어를 익힌 외국인의 독특한 언어 습관인가? 그 말(“마침내”)은 내뱉어진 순간부터 이리저리 갈라지며 여러 겹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서래(탕웨이)는 말한다.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서래는 후에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뜻이라고 정정했지만, 저 문장이 전하는 묘한 인상을 떨쳐내기 힘들다. 여기에는 서래가 처음 뱉은 중국어 소리와, 번역기가 변환한 어색한 한국말과, 서래가 다시 정정한 한국어의 세 가지 층위가 공존한다. 하지만 서래의 말은 세 층위 중 어느 하나에 귀속되지 않은 채로 다양한 의미를 뿜어낸다. 음악에 빗대어볼까. 단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음이라면, 서래의 말은 부드럽게 퍼지는 3도의 화음이다. 선명하지 않으나 모호하고 풍성해서 아름답다. 마치 화음처럼 여러 의미를 동시에 뿜어내는 다층적인 언어들.
영화가 진행되며 다층적인 언어들은 늘어난다. 오케스트라 협주같이 유려한 화음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깨닫는다. 이 언어들이 은밀하게 공유하는 하나의 멜로디가 있음을. 그것은 ‘애정의 멜로디’다. 이포에는 왜 왔나요(나를 보러 여기까지 왔나요). 그게 당신에게 중요한가요(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했는지 궁금한가요). 언어뿐 아니다. 그들의 행동의 기저에는 늘 뭉근한 애정이 흐른다. 초밥. 치약. 깃털. 잠복 수사. “굿모닝”. 재떨이. 핸드크림. 어둡게 찍힌 사진. 그 행동의 표면은 건조한 일상으로 포장돼 있으나, 한 꺼풀 아래에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애정이 흐른다.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고백하지 못하고, 언어 사이에 숨겨 슬쩍 전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신분 때문일 것이다. 형사와 피의자. 사심을 나눠서는 안되는 사이. 상황 때문일 것이다. 결혼반지를 낀 남자와 방금 뺀 여자. 속내를 털어놓기 힘든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품위 있게 살아온 남자와 한국말이 서툰 여자. 그럼에도 신분과 상황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들 사이에 끊임없이 감정이 오가고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비극적이게도 반대의 상황도 벌어진다. 사진을 없애고, 음성 파일을 지우고. 애정의 이름으로 수행된 많은 행동의 기저에 증거를 인멸하려는 검은 의도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해준(박해일)은 절망한다. 모든 것은 그저 완벽 범죄를 꿈꾸는 블랙위도(교미 후 수놈을 잡아먹는 암거미)의 계략이었나. 하지만 서래는 자신의 행동이 나쁘게만 비치길 거부한다(“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결국 그녀의 행동은 애정과 범죄, 두 층위에 동시에 머무른다.
이들의 독특한 대화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둘은 함께 절에 가서, 북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은 번갈아가며 북을 친다. 해준이 말을 건네며 북을 한번 치고(둥), 서래가 대답하면서 두번(둥둥), 다시 해준이 답하며 세번(둥둥둥).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타격음이 하나둘 쌓이며 장난스럽고도 다정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 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짐짓 모른 척 평범한 대화가 계속된다. 두개의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 장면은 <헤어질 결심>이 구축한 언어 세계의 작동법을 우아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대사가 등장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 말을 듣고 또 들은 서래는 행동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 행동이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핸드폰은 해준에게 고이 전달한다. 대신 그녀가 바다에 버리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녀는 마치 해준의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겠다는 듯, 스스로를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한다. 이 선택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 길을 둘러왔음을 고백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이 말 역시 여러 의미를 품고 있다. 우선 증거를 인멸해 진실을 은폐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의미도 숨겨져 있다. 해준은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잃고 완전히 붕괴되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서래를 지키려고 한다. 이 비참하고 애절한 마음은 ‘사랑’이라는 넓고 투박한 개념 안에 넉넉히 들어갈 것이다. 서래가 해준에게 푹 빠진 것도 바로 이 맥락에서다. 그러니 해준의 말은 진실을 은폐하라는 지시이자, 사랑한다는 절절한 고백이다.
그 말에 화답하듯 서래는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를 바다에 빠트린다. 이 결단이 놀라운 이유는 해준의 말이 내포한 의미를 모두 포착해 거기 일일이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는 증거를 인멸하라는 지시를 듣고, 가장 커다란 증거인 자기 자신을 소멸시킨다. 이것은 해준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제 누구도 감히 서래와의 인연을 이유로 그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의 은폐라는 차원에서 그녀는 해준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말이 열렬한 사랑 고백임을 고려할 때 그녀는 해준의 기대를 완벽히 배반한다. 연인의 고백에 죽음으로 응수하다니. 이것은 잔혹한 형벌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꾸만 멀어지는 해준을 붙잡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이기도 하다. 서래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파괴적으로 증명하고, 떠나가는 그를 다시 포박한다. 제 손으로 연인을 지켜내는 동시에, 자신의 사랑을 완수하는 그녀의 결단은 놀랍다. 서래는 해준의 말을 따름과 동시에 배반하고, 그를 해방시킴과 동시에 속박한다. 그녀의 결단은 여러 갈래로 해석 가능한 해준의 말을 모든 층위에서 응수하고 완벽히 압도한다.
이것이 서래의 특별함이다. 박찬욱의 여자들 중에서 이토록 희생적이면서 잔혹하고, 순종적이며 주체적인 여자가 있었나. 이것이 만약 사랑에 관한 게임이라면 해준은 서래에게 완패했다. 그녀는 해준의 입에서 나온 언어로 거미줄을 치고 그를 단단히 사로잡아 끌고 간다. 해준이 피의자가 걷던 길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성실한 형사였음을 상기해보자. 그는 서래를 따라 이포 바다에 왔고, 미결 사건이 되기를 자처한 여인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해준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이제 영화의 제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할 결심이고 죽을 결심이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결심이다. 일찍이 박찬욱의 세계에는 없었던 모호하고 아름다운 언어들과, 본 적 없이 대담하고 낭만적인 결단이 이곳에 있다. 정확히 <헤어질 결심>이 창조해낸 세계의 크기만큼 박찬욱의 세계는 진화했다. 그와 함께 나는 지금 아득히 푸른 바다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