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시작한 카라(Korean Animal Right Advocates) 동물영화제가 올해로 5회를 맞이하며 서울동물영화제로 찾아왔다. 장마, 홍수, 가뭄, 폭설 등 다양한 자연재해를 겪은 지난 3년 동안 ‘생태계와 공생’은 이 시대의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카라’ 사무실. 오후 햇살에 널브러진 고양이와 마구 뛰노는 강아지가 뒤섞인 공간에서 서울동물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임순례 감독과 단편경쟁 심사위원인 김효진 배우를 만났다. 콧등과 옷깃에 털을 잔뜩 묻힌 채 동물영화제의 의미와 10월27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올해 영화제에 거는 기대를 이야기했다.
임순례 감독은 집행위원장과 본선 심사위원을, 김효진 배우는 본선 심사를 함께 맡고 있다. 어떤 계기로 서울동물영화제에 함께하게 되었나.
임순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카라 대표를 맡아왔다. 영화인으로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의 힘을 잘 알기에 자연스레 자리를 만들었다. 사실 작은 단체가 영화제를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2018년 카라동물영화제 첫회 때는 6편으로 조촐하게 시작했다. 규모가 작고 기간도 짧아서 보고 싶지만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규모를 늘리고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서울동물영화제라는 이름하에 탈바꿈했다. 올해엔 작품 수가 21개국 48편에 달한다.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김효진 일단 동물권이라는 주제가 좋았다. 1회부터 쭉 영화제를 방문했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동물을 주제로 한 영화제가 없다 보니 워낙 새롭게 다가왔고, 지난해부터 위원회에 함께하면서 개인적으로 애정과 친근감이 더 커졌다.
명칭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난해까지는 카라동물영화제였던 명칭이 올해부터 서울동물영화제로 바뀌었다. 목표도 함께 확장됐을 것 같은데.
임순례 기존에는 동물권에 관심 있는 사람 위주로 영화제를 꾸렸다면, 이제는 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실 동물권 영화라고 하면 왠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올 것 같으니까 동물을 좋아하는 분조차 못 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권 운동이 국제적 추세가 되고 한국에서도 주요 흐름으로 안착한 만큼 더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흥미로운 섹션을 구성했다. 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도 꾸릴 예정이다.
김효진 사실 나도 예전엔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왠지 보기 힘들 것 같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울 것만 같고. 감정적으로 여운이 오래 남으니까 일상이 힘들어지기도 하더라.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마음 편한 작품이 많았다. 꼭 동물을 주제로 한다고 해서 동물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환경, 인간의 삶,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등 다른 풍경으로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임순례 어쨌든 영화제의 매력이란 같은 지점에서 공감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하든 동물에 공감하든, 혼자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게 외롭게 느껴지던 시기를 끝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예전에 카라에서 <옥자>를 상영한 적이 있었다. 활동가와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상영관에 모였는데,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준호 감독님도 그러더라. 확실히 반응이 다르다고. (웃음) 서로의 공감대와 공통분모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올해 처음으로 단편 공모를 진행했다.
임순례 지금까지는 단편을 포함해서 여러 작품을 초청했는데 올해는 단편경쟁에 작품 공모를 받았다. 총 103편의 영화가 도착했고, 예선 심사를 통해 20편으로 추렸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으로 심사위원 세명의 최종심을 거친다. 극장가뿐만 아니라 퍼플레이에서 온라인 상영도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관객상도 주어진다.
대중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는 새로운 세대의 유입이 중요하다. 특히 불의를 참지 않고 가치 소비를 선호하는 Z세대는 동물권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말이 거친 액션 신을 촬영한 이후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젊은 세대가 직접 나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임순례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 공간은 원래는 도서관이지만 평소에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틴틴 카라’라는 10대 친구들과 함께한다. 올해에도 개식용 반대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직접 원고를 써와 발언했다. 발언 내용도 무척 좋았다. 확실히 어린아이들이 이런 문제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다. 학교에서 동네 고양이를 돌보거나 가치 소비를 위한 동아리를 만들고, 채식을 실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매체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채식과 동물권에 관한 영상을 보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효진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매체와 영화의 종류가 예전보다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TV를 봐도 이제는 환경이나 비건,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채식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임순례 요즘엔 비건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지 않나. 약간 ‘인싸’들의…. (웃음) 예전에는 고기 안 먹는다고 하면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했는데 이제는 어느 단계까지 먹는지 묻는 풍경이 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