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자연의 TVIEW]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2024-09-27
글 : 이자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은 제목부터 ‘계급 전쟁’이라는 컨셉을 내세우지만 기묘하게도 탈권위주의적 프로그램의 태도가 돋보인다. 먼저 <흑백요리사>는 참가자를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눈다. 명장 계급과 그의 자리를 엿보는 도전자 계급. 얼핏 수직적 구조를 발판 삼은 여느 서바이벌처럼 보이지만 계급 상승의 욕망을 더 자극하기 위해 흑수저간에 세부 계급을 나누지 않고, 흑백이 동등하게 평가받고 겨룬다는 점에서 기존 서바이벌 문법을 벗어난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한 블라인드 심사 또한 경직된 위계를 은연중 허문다. 이 설정은 참가자의 정체를 모른 채 공평하게 평가한다는 기본적인 목표를 뛰어넘어 <흑백요리사>의 코어를 이루는 백종원과 안성재의 심사 자격을 시청자가 직접 확인할 기회를 준다. 한 스푼 맛보는 것만으로 재료의 쓰임과 장르, 곁가지 부자재를 추정해내는 그들의 오랜 경험과 섬세함은 <흑백요리사>가 내리는 결정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계급 차는 어떻게 드러날까. 경연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것을 함부로 폄훼하지 않는다.마스터는 젊은이의 창의적이고 이색적인 실험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새 세대의 셰프는 장인의 시간과 경험을 존경한다. 프로그램이 계급 차를 구조적 불평등이나 조리 환경 차이로 설정하지 않으니 오직 경륜과 이력만이 그것을 알려준다. 급식대가를 향한 안성재와 백종원 또한 이 태도를 이어받는다. 성인 입맛을 기준으로 평가하던 이들은 급식대가의 지난 30년을 조명하기 위해 어린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급식대가가 조리사가 아닌 셰프의 이름으로 설 수 있는 것. <흑백요리사>의 탈권위주의가 아니었다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check point

이모카세, 급식대가, 이영숙 명인.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보기 어려운 중년 여성들의 활약이 무척이나 반갑다. 하지만 이들을 부르는 타 참가자들의 호칭이 제동을 건다. “역시 어머니가 계셔서 미역국을 잘 끓인다”(히든 천재), “이모님들 있어서 든든하다”(최강록). 여기에 이모님과 어머님이 어디 있지? 오직 셰프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