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는 반드시 세월을 필요로 한다. 캐릭터의 나이와 배우의 나이가 만나 생기는 주름진 굴곡 속에서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감정이 <아침바다 갈매기는>에 담겨 있다. 나이듦과 빈곤의 문제, 쇠락하고 갈등하는 지역 공동체, 다문화가정 내부의 서글픈 역학 관계를 바라본 이 영화는 노련한 70대 배우들이 이끌어나간다.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친숙해서 공교로운 조합, 윤주상과 양희경이다. 굵직한 연극무대와 안방 드라마를 수놓아온 베테랑들이지만 영화 주연작으로서는 실로 반가운 복귀이기도 하다. 곡진한 서사를 온몸으로 추진한 배우 윤주상과 양희경을 만나 어촌의 모진 풍파에 녹아든 과정을 물었다. 일평생을 예술하는 직업에 임해온 두 장인은 자기 앞의 생을 마주하는 짐짓 무던한 자세마저 닮아 있어 그들의 무연한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보험 사기극을 꾸며 남은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신은 마을을 떠나기로 한 어느 젊은 선원의 결심으로부터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어촌 마을의 내막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가 주의 깊게 내려앉는 자리는 청년의 마음이 아니라 그를 조력하기로 한 나이 든 선장의 입장이다. 70대의 선장 영국(윤주상)은 15년을 자식처럼 함께해온 선원 용수(박종환)가 바다에 빠졌다고 신고한 이후로 예기치 못한 길고 지난한 소동에 휩싸인다. 보험금 지급 과정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띠면서 아들을 기다리는 용수의 모 판례(양희경), 베트남에서 온 용수의 아내 영란(카작) 역시 각자의 이유로 서러워진다. 변덕스러운 바다에 둘러싸인 그들의 터전은 마을공동체의 긴밀함이 곧 족쇄와 상처의 원인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고기잡이로 변변찮은 생계를 유지하는 장년층은 진즉 지쳤고, 젊은이는 마을을 떠나고자 한다. 떠나지 못한 어떤 청년은 스스로 죽음도 초래했다. 일찍이 영국은 아버지의 강한 저지에 불응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막내딸을 가슴에 묻은 바 있다. 마음의 무게에 반쯤 짓눌려 살아가는 그이건만 삶의 파도는 야속하게도 자꾸만 아픈 기억을 데려다놓는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기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박이웅 감독은 데뷔작 <불도저를 탄 소녀>에 이어 이번에도 호감의 요소로 점철된 주인공을 구현하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우리는 정 붙이기 어려운 70대의 노선장, 구구절절한 말보다는 등짝을 한대 내리치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익숙한 류머티즘 환자와 동행하게 된다. 굵게 팬 주름과 상심한 입꼬리로 일관하는 두 주역은 영화의 서사를 단단히 밧줄로 고정해 정확한 감정 위에 정박하게 한다. 파도와 금빛 노을, 갈매기가 오가는 세계는 문득 정감 있다가도 생존이 급선무인 현실의 비정함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비밀과 오해로 점철된 사기극, 뒤엉킨 상실의 아픔, 경제적·사회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충돌하는 커뮤니티 내부를 다루는 박이웅 감독이 보편의 정서를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인물의 내면세계와는 거리감을 유지해서다. 거칠고 압축적인 대사와 몸으로 인생을 부딪쳐온 이들의 정동은 바로 이런 순간에 불씨를 지핀다. 말하자면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일견 투박한 외연으로 쓰여진, 그러나 한번도 절절히 끓지 않은 적 없는 내연의 드라마다.
첨예한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면서 결국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빈자리에 관한 영화로 수렴된다.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소멸을 전제로 한 삶의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나지 못한 딸과 마침내 떠난 아들. 그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들은 점점 사라지면서도, 계속 살아간다. 전통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팅이 아니고서는 가히 희귀하다시피 했던 무대와 인물을 스크린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너무도 불완전한 자기 앞의 생. 어김없이 돌아오는 아침이면 그것을 다시 살아내기로 하는 사람들의 처연한 완력을 닮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