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한 사람을 살아낸다는 것, <아침바다 갈매기는> 배우 윤주상
2024-11-29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 배우 윤주상 하면 특유의 울림 가득한 바리톤 목소리를 떠올릴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일찍이 배우, 성우 일로 진출하기로 결심한 데엔 목소리의 지분이 컸을까요.

그런데 사연이 있지요. 지금 대중이 기억해주시는 내 목소리는 사실 후천적으로 만든 것이에요. 원래는 테너에 가까운 더 높고 넓은 음역대의 소리였고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인 시절에 명동성당에서 야외 공연을 했는데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린 거죠. 2천명이 넘는 객석이 기다리고 있으니 공연을 그만둘 수가 없었고 억지로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성대가 갈가리 찢어진 겁니다. 찢어진 성대를 자꾸 쓰면 제대로 붙지 않거든요. 그 후로 1년 넘게 필담만 쓰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강제로 쉬었어요. 치료가 끝난 뒤 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조금만 높거나 세게 내면 요들송처럼 제멋대로 흔들리지 뭡니까. 그래서 아주 작은 숨소리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소리를 키워갔어요. 점차 정상적인 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더이상 예전처럼 하이 톤의 소리는 낼 수가 없었지요.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훨씬 낮아지고 두꺼워졌죠.

- 그렇게 달라진 목소리로 연기를 계속하려면 분명 적응 과정이 필요했겠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연극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이 아니에요. 노년의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죠.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해도 햄릿을 제외하면 리어왕도 늙은이고, 맥베스도 나이 든 인물이에요.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만도 60대의 세일즈맨이고, <만리장성>의 진시황제도 연배가 있죠. <안티고네>의 크레온왕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왕이고요. 물론 ‘아, 왜 예전만큼 소리가 안 나오지’ 하면서 답답한 순간도 있었지만 노인들의 소리는 로 톤이라는 점이 나를 살렸죠. 오히려 잘해볼 수 있겠구나,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 위기에서도 빛을 보셨군요.

그렇죠. 사실 저는 대학생 시절부터 아버지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 시절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젊은 배우들이 노역을 했으니까요. 연극 100편을 하면 청년 역할은 10편도 안돼요. 그래서 오히려 연기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삶을 배운 걸 수도 있어요. 그 인물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배우가 어떻게든 채워넣어야 하니까요. 그 사람의 정서를 내가 받아들이든, 내가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든 간에.

-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시나리오를 받고 금방 출연을 결심하셨나요.

처음 만날 때 까까머리 두 사람이 들어왔어요. 감독도, 제작자도 까까머리야. 처음에는 저 사람들이 형제인가 싶었죠. (웃음) 이 시나리오가 내 마음을 탁 사로잡았던 건 어떤 포구에다 그냥 카메라 갖다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박이웅 감독님에게도 그랬죠. 다큐멘터리 보는 것처럼 만들어지면 좋겠다고요.

- 충청도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깐깐한, 그러나 한편 푸근한 마음씨도 품은 아버지 역으로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서 활약하셨죠.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영국은 바닷바람처럼 거칠고 속을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입니다.

영국이는 처음 보기에는 객관적으로 관객이 좋아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 껍데기를 벗기고 들어가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죠. 왜냐하면 인생에 쌓여 있는 질곡들이 너무나 아프니까요. 부인은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딸은 목을 매 죽은 데다, 살아 있는 딸과는 거의 절연 상태예요. 이 모든 비극이 어느 정도는 자신, 그러니까 본인 성질로부터 왔다고. 모든 고전 비극이 다 자기 성격의 문제로부터 시작돼요. 그걸 운명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내가 이름 붙이기를 영국이는 ‘그냥 사는 사람’이에요. 그냥이라는 말은 참 아픈 말 아닙니까. 우리는 가끔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 보험 사기극을 꾸며 남은 가족을 건사하고 자신은 떠나려는 마을 청년 용수(박종환)가 나옵니다. 영국이 곤란한 상황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그를 도와주려는 심정을 어떻게 보셨어요.

아마도 영국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겠죠.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영국에게 용수는 15년 이상 뱃일을 가르친 후계자 같은 존재라서 영국이 언젠가 배를 못 타게 되면 그 배를 물려주려고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용수가 떠나도록 돕는다는 게… 영국은 쇠락하는 어촌을 떠나려는 자기 딸들을 제때 못 놓아줘서 막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잖아요. 이번엔 다른 거죠. 나는 안되지만 너라도 떠나라, 젊은 사람이라도 이제는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거지요.

- 용수의 모 판례(양희경)와 갈등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영국이 판례에게 “자네는 다 있네!” 소리칠 때 참 애틋했달까요.

판례는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으니. 영국도 사람인데 때로 가족이 얼마나 절절히 그립겠어요. 자기 마음을 고래고래 소리치는 이유는 다 분노 때문이에요. 그게 다 상처의 표현으로 읽혔어요, 내게는. 사실 이 남자는 판례가 거둬주지 않으면 어디서 밥 한끼 제대로 못 얻어먹을 사람인데 영국의 역사를 다 아는 판례가 가끔 뜨뜻한 밥 한끼 내주는 거지요. 옛날 한 동네 식구들은 그랬어요.

- 양희경 배우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시나요.

영화에서 이렇게 마주 보고 연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우리 둘 다 무대를 오래 사랑해왔죠. 서로의 연극을 많이 봤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게 있었어요. 판례 역을 양희경 배우가 한다고 해서 내가 속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자기 안에 삶을 담아낼 수 있는, 너른 품을 가진 배우잖아요.

- 실제 어촌 주민들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영국은 어떤 아픔이 있었건 자기 터전을 떠나서는 절대 못 사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 동네는 눈감고도 다닐 수 있고 소리만 들어도 어느 배가 고장났는지 알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촬영이 저녁이더라도 일부러 낮에 한참 동네 바닷가를 걷곤 했어요. 시장 사람들이 모여서 떠드는 소리, 서로 나누는 인사들을 보면서 삶에 배어 있는 몸의 언어를 익혀야 했거든요.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새 ‘김 서방, 이 서방’ 하면서 실제 주민들하고 조금씩 친해졌지요. 우리가 촬영한 배의 선장님과는 지금도 교류가 있어요. 그분이 나하고 배 타고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죠. 선실에서 뱃머리를 잡다가도 슛 들어가면 카메라에 안 잡히는 곳에 몸을 숨겨야 하는데 그 출렁이는 배 안에서 얼마나 고역이었겠어요.

- 영국의 서글픈 생애는 어촌 공동체의 퇴락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공들여 비추는 풍경이기도 한데요.

내가 태어난 동네는 한 50여 가구가 사는데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없었어요. 가을 추수하고 나면 50여 가구가 서로 다 나눠주면서 먹고살았죠. 서로 부엌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고 이웃집이 오늘 밥 삼시 세끼를 먹었는지, 한두끼는 굶었는지 다 알았다고. 그곳도 지금은 다 각자 별장 짓고 사는 동네가 되었어요. 변화를 막을 순 없지만 영화로 다시 들여다볼 수는 있지 않겠어요? 시골을 가보면 빈집이 자꾸 늘어나고,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들만 남아 있죠. 남아 있는 노인들마저 죽으면 그곳이 사람 살던 곳으로 기억될까 싶을 정도로 소멸되어가요. 반면 도시는 바글바글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박이웅 감독도 이렇게 파편화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선생님께 출연작을 주조연 같은 비중으로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짚자면 잠수함 함장으로 출연한 1999년작 <유령> 이후 무척 오랜만의 영화 주연작입니다. 무대와 드라마 세트장을 떠나 살아 있는 파도 앞에서 연기하셨죠. 간만에 느낀 영화 촬영의 묘미 같은 게 있었나요.

박이웅 감독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톤이었으면 했어요. 근데 그러려면 내가 연기를 더 감춰야 했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들키면 안되거든요. 연기를 안 하고 싶은데, 그냥 그 사람 자체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뭘 조금만 하려고 하면 바로 연기가 보이는 거예요. 연극학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배우는 여러 인물로 살아가야 하니까 각 인물의 정서를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연기술이란 일종의 테크닉인 겁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든 무대 위에서든 그 인물로 살아갈 때 마지막으로 필요한 궁극의 테크닉이 있는데 그건 바로 ‘테크닉을 감추는 테크닉’입니다. 연기는 꾸미는 것이지만, 꾸밈이 들키면 신뢰가 안 가요. 결국은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거죠.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나도 영국으로서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려니 너무 어려웠어요. 중간에 한 100번은 그만두고 싶었죠. 동해안에서 촬영 끝내고 돌아오는 첫날 정말이지 해방된 기분이었다고. (웃음)

- 뜻밖에 과제로 다가온 장면이 있었다면요.

대사 없는 장면인데도 26테이크까지 찍은 적이 있어요. 영국이 술을 진탕 먹고 잡혀들어가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자고 나온 장면이죠. 쓰린 속으로 파출소를 나오면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장면이었어요. 그뿐이었죠. 처음엔 구름이 해를 가려서 노출이 바뀌어 다시 찍었고 두 번째부터는 오케이할까 말까 하는 수준, 세 번째부터는 이상하게 나한테 습관이 들어서 하면 할수록 처음 같지 않은 겁니다. 그러다보니 26테이크까지 갔어요. 감독님이 나중에 말씀하시길 결국 두 번째 테이크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 오리지널 희곡 연극 출연작만 160여편. 무대에서 일가를 이루셨지만 상대적으로 영화 팬들은 선생님을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적었습니다.

사실은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요. 많이 하고 싶었어요. 무대의 매력에 푹 빠져 살다가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거죠. 나 혼자 살 때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지만 동반자가 있을 때는 달라요. TV쪽으로 발을 담가보니 생활비도 생기고 계속 하다보니 인연이 만들어져 거기에 오래 머무르게 된 거죠.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불러줘도 못 갔어요. 아쉬운 기회들이 많았죠.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준비하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스크린으로 옮긴 할리우드영화들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캐서린 헵번이 사랑했던 스펜서 트레이시의 연기가 내겐 교과서 중 하나였지요. 스펜서 트레이시가 <노인과 바다>를 한 뒤에 나중에는 앤서니 퀸도 같은 작품을 했는데, 두 배우의 연기를 비교해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모니터 양쪽에 동시에 틀어놓고 본 적이 있어요. 앤서니 퀸은 멋있지만 연기가 보였고, 스펜서 트레이시는 그냥 그곳에 살고 있었어요. 나도 영국을 그렇게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그 말이에요. (웃음)

-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다시 문을 여셨으니 70대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가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져야겠습니다.

정말 바라고 있어요. 노년의 삶을 그리는 좋은 시나리오가 많이 나왔으면 해요. 인생은 어린아이부터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잖아요. 시장이 당연히 젊은 층 위주로 돌아갈 수밖엔 없겠지만,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든 이 시대에 노인들의 애환과 아픔을 진솔하게 담은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이 주연한 <황금 연못> 같은 영화, 얼마나 좋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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