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밤엔 왠지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젖어든다. 아직 한 문장도 쓰지 않았건만 소리를 먹는 새하얀 고요 안에서 이미 명문이 완성된 양 취해 있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쓸 때 ‘꽃은’과 ‘꽃이’를 두고 담배 한갑을 다 피우며 고심했다고 한다. 작가에 빙의하여 나도 ‘첫눈이’라고 할지 그냥 ‘첫눈은’이라고 쓸지 고민해본다. 너무 빨리 쓰면 안될 것 같아 ‘내린다’와 ‘내렸다’ 사이에서도 괜히 한번 서성인다. <설국>의 저 유명한 첫 문장과 비견될 법한 문장이 나와버리면 어쩌나. 설레발로 점철된 도취의 밤을 지나 마침내 완성된 첫 문장의 꼴. ‘첫눈이 내린다.’ 짧았던 밤이 끝나고 현실로 복귀한다. 훈훈하게 데워두었던 방바닥도 어느새 차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명문장은 단지 하나의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작품의 총화를 묶어서 응축된 깊이를 가졌을 때 비로소 위대한 한 문장으로 발현될 기회를 얻는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그 자체로도 감각적인 풍경 묘사와 함께 궁금증을 유발하는 좋은 문장이다. 하지만 이 문장의 진가는 기차 차창에 비친 풍경을 녹여낸 서문을 지나, 타인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 디디는 작품 전체의 심상과 일치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 깊이를 담보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금방 시들어버리는 법이다. 기억될 만한 명문장이란 그 깊고 깊은 의미의 끝자락에 핀 한 송이 꽃봉오리를 닮았다.
영화 속 명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 영화를 본 뒤 전체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더라도 몇몇 장면과 대사, 음악 등은 오래 남는 경우가 꽤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장면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를 초과하는 개별의 장면이 홀로 존재할 순 없다. 아무리 수준 높은 촬영과 ‘있어 보이는’ 장면도 영화 전체의 서사나 방향과 결이 맞지 않다면 그저 거추장스러운 방해 혹은 허영과 과시의 흔적에 불과하다.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좋은 장면이란 무엇인가. 그 모든 고민은 영화언어의 최소단위인 촬영에서부터 걸음을 뗀다. 전설적인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말을 빌리자면 촬영이란 “세계관을 담는 과정의 예술”이다. 요컨대 ‘찍는다’는 것은 눈앞의 대상을 담을 뿐 아니라 카메라를 든 사람의 태도가 투영되는 대화의 동작이다.
겨울이 오면 조건반사처럼 몇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온 세상이 눈에 묻힌 밤, 한 글자도 제대로 못 쓰던 길고 고요한 밤을 핑계 삼아 나의 겨울영화 몇편을 꺼내본다. <가위손>, <해리 포터> 시리즈, <이터널 선샤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캐롤>까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눈송이처럼 이리저리 머릿속에 흩날린다. 지금은 장면의 깊이만큼이나 그 뒤에 카메라를 들고 있을 사람이 궁금하다. 문득 올해 한국영화 중 되새겨봄직한 장면을 찍은 이들, 그중에서도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촬영감독들도 궁금해졌다. 설사 기억되고 기록될 명장면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들이 스크린에 새겨나갈 진심의 궤적은 이미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테니. 어느새 밝아온 아침, 첫눈이 소복하게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