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월레스와 그로밋을 찾아온 때는 월레스가 경제적으로 곤궁한 형편에 처했을 시기였다. 발명가 양반은 자신의 영감을 주체할 수 없기에 늘 과하게 발명을 해댄다. 체납 고지서는 쌓이고, 여윳돈은 없다. 그나마 변통할 수단이라면 방치된 방 하나를 세놓는 것. 그래서 세입자를 들이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 그가 찾아왔다. 과묵하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허름한 방 대신 그로밋의 방을 차지한다. 굴러온 돌은 너무나 당당하게 박힌 돌을 빼냈다. 집주인 월레스는 당황했지만 당장 한푼이라도 아쉬웠기에 받아들였다. 그는 무례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략적으로 살갑게 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월레스에게는 살갑게, 그로밋에게는 무례하게 굴었다. 월레스와 그로밋의 관계에 파고들어서 둘을 떼어놓는 것, 이간계는 적중했다. 이제 월레스의 집은 그의 거사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었고, 월레스는 범죄의 대리 수행인으로 조종될 운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기생충>과도 같은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페더스 맥그로우, 그의 이름은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1993년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 <전자바지 대소동>에 등장한 이 문제적 펭귄은 이 시리즈의 첫 빌런 캐릭터이다. 존재감은 제법 훌륭했다. 나름 반전의 캐릭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왠지 귀여움으로 어필할 것만 같았는데, 되짚어보니 꽤나 용의주도한 포커페이스였던 것이다. 빨간 고무장갑을 뒤집어쓰면 (우리는 다 알아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영락없이 그를 ‘닭’으로 여기는, 변신술의 귀재이기도 하다.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치고자 했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복면을 뒤집어쓰고 무작정 난입하는 막무가내 은행털이범은 아니었다. 사전 현장 답사는 치밀했다. 월레스의 집을 확보할 만큼 용의주도했다. 범행 현장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대신 월레스를 전자바지에 태워서 원격조종했다. 나름 지능범이다. 그러면서도 쫓길 때는 몸을 써가며 제법 열차 강도처럼 위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완성형 빌런이었다. 그랬던 페더스 맥그로우가 돌아왔다. 이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반복, 증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월레스와 그로밋 세계관의 확립이면서도, 아드만 유니버스의 확장이기도 하다. 어째서?
웨스트 왈러비 거리 62번지

셜록 홈스의 이야기는 베이커가 221B에서, 해리 포터의 이야기는 프리벳가 4번지에서 시작하고 끝나고 다시 시작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웨스트 왈러비 거리 62번지(정확한 주소는 62 West Wallaby Street, Wigan, Lanca shire WG7 3FU이다. 실재하는 지역이지만 주소는 허구이다)에서 반복된다. <전자바지 대소동>에서 아침마다 독촉 고지서가 배달된 주소이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이하 <복수의 날개>)에서도 그 주소 그대로 독촉장과 청구서가 날아든다.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으며, 청구서와 독촉장을 해소할 만큼 형편이 나아지지도 않았나 보다. 월레스가 무능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가 유리창 청소(<양털 도둑>), 유해동물 퇴치(<거대 토끼의 저주>), 빵집(<빵과 죽음의 문제>) 등등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저 벌이에 비해 발명에 투자하는 금액이 늘, 항상 많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발명에 진심이다.
그렇다. 발명에 진심이라는 점, 그래서 어쨌든 뭔가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기상 루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옆 버튼을 누르면서 그로밋에게 아침 인사와 지시를 전달하고, 침대에서 식탁으로 이동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그 와중에 자동으로 준비되는 식사를 한입 먹는 것까지의 자동화 과정을 보자. <전자바지 대소동>에서 그 시간은 대략 30초 남짓이었다. <복수의 날개>에서는 얼추 110초에 이른다. 효율 따위는 무시하자. 잘 알려져 있듯이, 이 과정은 골드버그 장치처럼 ‘단순한 작동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면서’ 재미를 주는 설정이다. 그는 확실히 진일보(혹은 퇴일보)하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돌연 이 시리즈의 선후관계를 따져보게 된다. <전자바지 대소동>과 <복수의 날개>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양털 도둑>과 <거대 토끼의 저주> <빵과 죽음의 문제>가 어느 시간대에 놓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얼핏 어느 에피소드는 그 사이에 놓일 것 같다가도 오히려 제일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혼돈의 원인은 여럿이다. 반복되거나 교차, 대치되는 인물들이 우리의 시선을 교란할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월레스의 마음을 잠시 흔들었던 여인들이 있을 수 있고, 때론 다정하게 때론 매몰차게 월레스를 대했던 마을 주민들이 있을 테고, 잠시 잠깐 스쳐간 부수적인 인물들도 있게 마련이다(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기법에서 ‘1회용 캐릭터’라는 건 자원 낭비일 터!). 이들 중 알버트 매킨토시 경감은 에피소드의 시간적 선후관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한편 페더스 맥그로우가 수감된 감옥은 동물원이기도 하다. 동물원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 목록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아드만의 첫 번째 아카데미 수상작이자 감독 닉 파크의 이름을 아드만 스튜디오와 동격 이상으로 알린 <동물원 인터뷰>(이후 TV시리즈로 제작되었다)의 주요 무대이기 때문이다. 두 시리즈에서의 동물원과 동물은 성격이 다르지만(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인간 캐릭터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양털 도둑>에 등장했던 어린 양 숀은 이후 TV시리즈와 장편을 통해 자신만의 인기를 구축해나갔다. 반면 <빵과 죽음의 문제>에서 그로밋의 마음을 훔친 플러플은 이번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 나아가 아드만의 애니메이션 속에는 배경과 소품, 기사와 대사 등이 서로가 서로를 언급하고 인용하면서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관심이 있다면 (여러 온라인 정보들을 활용하여) 아드만 유니버스를 발견하는 재미를 맛보길 권한다.
하이 테크놀로지를 거슬러 오르는(슬)로 테크놀로지

물론 <복수의 날개>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이에 대한 태도이다. 리모트 컨트롤로 작동하는 전자바지와 <복수의 날개>에 등장하는 ‘노봇’ 사이에서 <양털 도둑>의 사이보그 로봇 프레스턴은 아무래도 공학 기술로는 중간지점에 놓일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월레스의 발명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노봇은 월레스의 지식과 기술을 집대성한 역작임이 분명하다. 그 이전까지 월레스는 주로 가내수공업 수준의 기계장치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을 뿐(아, 물론 달까지 다녀오기는 했다), 전자제어장치 분야는 취약했다(그래서 오작동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복수의 날개>에서는 말 그대로 월레스 발명의 ‘특이점’에 다다른다. 로봇공학, IT, 나아가 사물인터넷(IoT)에 이르기까지, 지금 당장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해도 무방할 만큼의 성취를 보인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미래로의 도약보다는 과거로의 회귀가 지배적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의 산물인 노봇이 등장해도, 전체 맥락에서는 오히려 스팀펑크에 가까운 설정으로 보인다. 즉 우리는 노봇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노봇이 놓여 있는 환경과 맥락을 함께 보게 된다. 그랬을 때 이 공간은 30여년 전 월레스와 그로밋이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조용한 동네 ‘웨스트 왈러비’에 머물러 있다. 이곳에서 스케일과 스피드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아드만은 <치킨 런> 시리즈에서 스케일과 스피드를 구가할 수 있었다. 단 이를 위해서는 할리우드라는 자본과 시장이 함께해야 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어디까지나 웨스트 왈러비 주민일 뿐이다.
웨스트 왈러비라는 동네는 지배적인 오락영화의 물리법칙이 거꾸로 작동하게끔 하는 마법이 있는 듯싶다. 빠른 것은 느리게, 느린 것은 더욱 느리게. 속사포 만담 대신 침묵이나 아재 개그가 대체하는 곳. 그러면서도 마냥 명랑하지만은 않은, 어둡고 음습한 집착과 공포, 무능과 부조리가 내밀히 깔려 있는 세계. 다시 말해 영국식 블랙코미디의 뒤틀린 취향이 온전히 보전된 세계로 우리는 늘 되돌아온다.
그러다 보면 월레스와 그로밋이라는 두 주인공의 관계, 그리고 이들과 아드만의 관계를 묻고 또 묻게 된다. 사족보행과 이족보행을 수시로 전환하면서 벽돌 책을 읽어내는 지적 존재인 그로밋 입장에서 월레스는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월레스가 무용지물인 존재만은 아닐 터. 월레스는 선의와 현실이 늘 엇나가는, 뭔가 이상적이면서도 은근 망상적인, 하지만 나름 성실한 인물이다. 이 둘은 전통적인 2인조 콤비, 즉 상호 보완적인 커플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두개의 쪼개진 자아로도 볼 수 있다.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 둘 사이의 균열은 더욱 두드러지고 서로 충돌하는 분열적 성격 또한 강화된다. 말하자면 월레스와 그로밋은 한 가지를 추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나머지 가능성을 상대방에게 양도하는 셈이다.
이러한 대립과 보완 관계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현 모습이기도 하다. 컴퓨터그래픽의 발전과 함께 오브제를 움직이는 제작 기법은 3D애니메이션에 의해 늘 위협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손맛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기존의 팀 버튼과 헨리 셀릭 이외에도 웨스 앤더슨과 기예르모 델토로처럼 새롭게 뛰어드는 야심가들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을 3D애니메이션 이상으로 화려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아드만은 그런 성격의 스튜디오가 아니다. 크고 빠르고 과시적으로 가느니 차라리 작고 느리고 소박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보여주는 전략, 애초에 아드만이 스스로를 알리고 사람들을 매혹시킨 자신들만의 정체성이 아니던가! 할리우드의 맛을 원한다면 때론 드림웍스 같은 파트너와 함께할 수 있지만, 본래의 홈메이드/핸드메이드 맛을 원한다면 아드만 자신들의 주도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자동기계는 애니메이터를 구원할 수 있을까?

<복수의 날개>가, 그리고 ‘발명가’ 월레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신상은 바로 노봇이다. 허드렛일을 대신 해주는, 말 그대로 로봇이다. 그저 원격조종되는 단순한 기능에 머물지 않고, ‘성격’ 세팅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달이 난다. 더구나 이 노봇은 인터넷을 통해 원격제어가 가능하다. 해킹을 통해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테크놀로지의 편리함과 더불어 위험성도 함께 바라본다는 입장은 비단 아드만 스튜디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늘 기술적 유토피아와 함께 테크노 디스토피아를 다뤄왔다. 수많은 기계장치(단순한 진공청소기부터 슈퍼 로봇까지)는 폭주하곤 했다. 특히 <복수의 날개>는 1924년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아웃 오브 디 잉크웰> 시리즈 중 <더 카툰 팩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리즈는 실사 애니메이터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간 옥신각신 실랑이를 늘 반복하지만, <더 카툰 팩토리>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기계를 새롭게 투입한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광대 코코)가 조종해서 작동시키는 단순한 메커니즘이지만 이내 대량생산을 위한 자동화 기계로 발전하고, 이후에는 피조물인 애니메이션 캐릭터(광대 코코가 아니라 오리지널 애니메이터를 모사한 캐릭터)가 창작자인 애니메이터를 위협하는 식으로 폭주, 오작동한다. 100년 전이나 현재나 애니메이터는 자신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테크놀로지를 꿈꾸지만, 그 순간 창작자이자 창조주로서의 지위가 지워질 수 있다는 위협을 잘 알고 있다. AI를 바라보는 입장도 그러할 것이다.
소멸하는 아드만 스튜디오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의 역사를 지배하는 요인 중 하나는 소멸이다. 2005년 10월, 아드만 창고 화재 소식은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에게 안타까움을 선사했다(1년 전 사치 갤러리 창고 화재가 현대 미술계에 끼친 충격을 떠올리게 한다). 화재 때문에 소실된 피해 목록은 비로소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업이 디지털 데이터가 아니라 구체적인 오브제와 아트워크임을 가리켰다. 작품에 쓸 클레이가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2023년 11월의 기사는 여전히 이들의 작업이 재료의 물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었다. 플라스티신과 같은 특정 클레이가 주재료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필요한 성질을 얻어내는 혼합비는 각 스튜디오의 기밀 정보이다. 물리적 제약이 새로운 가능성을 이끈다는 점은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늘 증명해왔다. 2017년 6월, 월레스의 목소리를 맡았던 피터 샐리스의 타계 소식 또한 월레스와 그로밋이 현실 세계의 유한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1989년 첫 에피소드 <화려한 외출>에서부터 함께했던 피터 샐리스는 월레스 그 자체이기도 했다. 벤 화이트헤드가 목소리를 이어받았지만, 오리지널 목소리를 모사하는 월레스에 익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리처드 해리스의 덤블도어에서 마이클 갬본의 덤블도어로 이행하는 것으로 비유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