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강단있고 솔직하게 현재를 직시하다, <다모>의 하지원
2004-01-07
글 : 박혜명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그를 ‘영화배우 하지원’이라고 부르자 하지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응답했다. “‘영화배우’는 정말 멋있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말을 들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주인공을 하고 연말 연기대상에 최우수상 후보로 오르는 것이 아직도 꿈 같아요. 제 주위 분이 예전에 그런 말도 하셨어요. 넌 스타성이 없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앉자마자 웃으면서 “이거 드실래요?” 하며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드는 그에게는 살갑고 평범한 인상이 지배적이다. “아직 내 연기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고백도 솔직한 만큼 수긍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폰>과 <색즉시공>의 흥행은 주연배우 하지원의 몫이라고 보기 어렵고, 지금 수준의 관심과 주목은 드라마 <다모>가 만들어낸 것이다.

<다모>의 ‘채옥’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남자 주인을 모시는 몸종 채옥은 연인의 사랑에 기대기보다 혼자 땅을 딛고 서겠다는 의지를 지닌 여성이었고, 거침없이 휘두르는 칼놀림은 그 의지의 상징이었다(혹자는 이를 연기한 하지원을 두고 “액션이 어울리는 드문 여배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건조하지만 그래서 더 연약했던 여인이고, 슬퍼도 깊은 절망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와 반대로 웃음이 많은 하지원은 기본적으로 밝다.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니까 크게 우울할 일이 없다. 너무 목이 말라서 회식 자리에 놓인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니까 한 PD가 그러더란다. 맥주를 저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그러다가도 차 타고 창 밖을 이렇게 내다보고 있으면 괜히 슬퍼지고 그래요”라면서 또 웃는다.

매니지먼트사의 제안을 받고 엄마와 상의 끝에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하지원은 “연극영화과에 붙어오라”는 소속사 말에 시험을 쳤다. 친구들이 “너 정말 연기자할 거냐”고 못 미더워 묻던 그때 그는 교수들 앞에서 열심히 돌고래 마임을 했다. 돌고래 쇼를 하다가 먹이를 받아먹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정신없이 돌고래 흉내를 내고 있는데 한 심사위원이 대뜸 물었다. “학생, 연기는 해봤나?” “아니오.” 그렇게 세 군데에 지원해서 기특하게도 모두 합격했다.

데뷔 초에 “주위에서 너는 안 된다더라”는 말을 듣고, 소속 사무실에서 스타성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온 배우. 그런 배우에게는 범접 못할 아우라보다 남들이 다가서기 쉬운 태도가 훨씬 유익한 장점이 돼줄 것이다. 쉽게 웃고 사소한 데 즐거워할 줄 아는 성격도 큰 보탬이 되리라. 그 태도나 성격에 비해 평범치 않은 역할에서 인상을 남긴 그는 먼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말하지 않는다. “여배우로서 저는 앞으로 3년, 길어야 5년이래요. 이 생활에 대해 안 좋은 얘기도 다 알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건 잘 생각 안 해요. 그냥 지금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아요.”

그 즐거움은, <내 사랑 싸가지>에서 싸가지 없는 남자에게 불쌍할 정도로 심신을 혹사당하는 고3 여고생 ‘강하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영은 싸가지 없는 ‘주인’에게 지지 않고 맞대응할 만큼 강단있고 솔직하다. 그리고 하지원은 자신이 가진 연기기술보다 “상대배우와의 눈맞춤과 그 속에서 끌어내어지는 감정”에 충실해 이 인물을 연기한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또래 감독과 상대배우를 만나 작업한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쏟아지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는 모습도 엿보인다. 이것이 하지원이라는 배우가 자기 존재를 보이는 방식인 것 같다. <다모>에서 무너질 듯한 마음을 강하게 추스르는 채옥으로 시선을 끈 그가 정반대의 지점에서도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는 건, 아직 고정되지 않은 틀 속에 진심이 움직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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