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상 이변의 대재앙 앞에 선 아비의 애틋함, <투모로우>
2004-06-02
글 : 김수경
지구를 얼려 만드는 팥빙수, 롤랜드 에머리히표 재난 블록버스터

여기 한 아비가 있다. 세상은 기상 이변의 대재앙에 휘말린다. 평소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恨)이던 아비는 재난 한가운데 놓인 아들에게 ‘구출’을 약속하고 아내를 남기고 길을 떠난다. <투모로우>는 롤랜드 에머리히가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문제해결 방식과 정반대로 나아간다. 국가를 위해 가족을 등지고 위험에 뛰어들던 ‘영웅’은 세상의 파멸 앞에서 아들을 찾아나서는 ‘아비’로 탈바꿈한다. 다만 감독의 전매특허인 ‘크기가 중요’하다는 원칙은 여전하고 스펙터클에 대한 무한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잭 홀(데니스 퀘이드)이 처음 기후 변화의 조짐을 포착하는 극지장면, 강풍과 폭우에 휩싸인 뉴욕,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세계 곳곳의 ‘특파원 신’을 통해 여름 블록버스터 특유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뉴욕 전체를 냉장고로 활용하여 얼렸다 녹였다 하는 설정은 그러한 쇼맨십의 절정을 보여준다. 물바다로 변한 뉴욕이 빙하기로 변해가는 장면의 CG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패트리어트>의 상황과 달리 <투모로우>는 물리칠 악의 무리가 없다는 점이 이야기 구조에 부담을 안긴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끌어온 것은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를 통해 위력이 입증된 기독교적 테마와 공포물의 장르적 차용이다. 그것은 스타일과 내용의 분리를 의미한다. 구텐베르그 초판 성경을 감싸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와 페니실린을 구하기 위해 나선 아이들 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늑대들이 바로 그 산물이다. 환경의 중요성이나 문명의 자승자박을 강조하기보다는 인류와 ‘자연’이라는 신격을 충돌시키는 근대적 ‘원죄’의 드라마가 눈앞에 펼쳐진다.

<투모로우>에서 신과 기후와 플롯은 동격이다. 아들을 위해 장도에 오른 아비의 애틋함은 어이없는 동료의 죽음과 지나친 우연이라는 악천후에 비틀거린다. 반대편에서 아버지의 도착을 기다리는 아들(제이크 길렌할)의 확신도 인과적인 연결고리 없는 막연한 기대에 가깝게 그려진다. 앨 고어를 닮은 고뇌에 찬 대통령은 대사 한줄로 화면에서 사라진다. 국민들의 대피를 과감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우유부단함과 아비의 확고부동한 결단은 결과로만 따지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 본질적 차이란 없다. 그것은 단지 운명론이라는 좁은 틀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전적으로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미세한 간격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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