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취재] 일본 AV, 음란영화의 모든 것 - 26개 채널, 24시간 방송
2004-08-04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AV의 거장이면서 AV의 또 다른 면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도요다 가오루 감독은 21세기를 2년 앞두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결국 살아가면서 욕망에 묻혀가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다. 욕망하는 것의 근원적인 힘과 끝없는 거짓, 모든 것의 쾌락장치는 그 양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것이 시대에 맞춰 세분화, 거대화되고 있는 것이 포르노비디오에 적용되지 않을까. 어쨌든 다른 장치에서는 획득할 수 없는 욕망, 영상으로만 충족 가능한 욕망, 그런 것을 나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냥 이 상태로 21세기로 돌입해도 괜찮은 걸까, 어떻게 되는 걸까 일본은?”

21세기의 일본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AV가 세분화, 거대화하는 욕망의 거울이란 건 더욱 분명해졌다. 도요다 가오루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 1년 전 위성방송 ‘스카이퍼펙TV’가 AV 채널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300개 채널 중 26개 채널이 AV를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위성 AV의 연간 매출 규모는 150억∼200억엔(약 1500억∼2천억원). 적자를 보는 채널은 단 한곳도 없이 성업 중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과 포르노의 상부상조는 이제 역사의 진리다. 비디오데크가 생겨난 80년대 초 음성적인 블루 필름의 시대가 사라지고 AV가 밝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고, DVD가 생겼을 때 AV 판매 및 대여시장이 새롭게 도약했으며(AV 비디오 및 DVD 시장 규모는 위성 AV의 두배에 이른다), 위성방송이 또 하나의 예기치 못했던 시장을 만들어냈다(역으로 AV가 VCR과 DVD 플레이어, 위성방송의 초기 시장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으니 어찌 상부상조가 아닌가). 그리고 인터넷은 제작사가 ‘저작권 추적’을 포기할 만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파죽지세의 파생시장을 만들어냈다.

명랑운동회, 정치 풍자 등 내용과 기법 세분화

올해로 설립 9년째인 SOD는 수십명의 여배우를 동원해 AV식 명랑운동회를 찍어 성공했다.

이런 거대화와 동시에 AV는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쪽으로 세분화했다. 올해로 설립 9년째인 후발주자로 연간 20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리며 수년째 제작사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소프트온디맨드’(SOD)의 기획 작품들이 그 대변인이다. 나다야 케이치 편성부장은 SOD 초창기의 새로운 시도가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TV 출신의 다카하시 가나리 사장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란 착상을 떠올렸다. 500만엔짜리 여배우 1명이 아니라 5만엔짜리 배우 100명을 출연시키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AV에 데뷔하는 배우들만 모아 단체물을 만들어 SOD가 성공했고 이런 차별성을 지금도 유지해오고 있다.” 단체물이란 쉽게 말해 수십명의 여배우를 동원해 AV식 명랑운동회를 여는 것이다. SOD는 그 다음해에는 저속촬영기법을 이용해 예전에 없던 장면을 포착해냈고, 또 그 다음해에는 검은 선팅의 유리창으로 꾸민 특수차량을 시내 한복판에 주차시켜놓고 길거리 헌팅을 통해 즉석에서 배우들과 일을 벌이는 쇼를 벌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4대의 대형크레인으로 높은 공중에 투명한 무대를 설치해놓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헬기가 공중촬영하도록 했다. SOD는 최근 20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데 1천여명이 몰려들 만큼 성공한 회사가 됐다.

SOD가 남성적 관음증을 한 발짝 앞서 이끌어갔다면, ‘V&R 플래닝’은 그 역의 전략으로 차별화를 이뤘다. 일종의 성 정치학이다. ‘V&R 플래닝’의 <충격작품집>은 모든 클립을 제국주의 시대 일본을 풍자하는 기록화면으로 시작한다. ‘종전 50주년 기념작’이라고 내건 작품에선 군복입은 청년이 진짜 최루액을 발사하며 가정집에 뛰어들어 남자를 제압하고 여자를 욕보인다. 또 여배우가 실제 노숙자를 찾아가 실컷 술을 사준 뒤 그와 일을 벌인다. 이건 아주 얌전한 편이다.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이 가짜 소품을 활용한 정치극이었다면, <충격작품집>의 대부분은 진짜 대변과 피와 마조히스트와 채찍을 등장시켜 실재하는 ‘살로, 소돔 120일’을 만들어낸다. 달리는 승합차에 정치적 구호를 써붙이고 배우들이 사정없이 오물을 토해낸다. 성욕을 오히려 감퇴시키는 AV랄까.

일본 AV는 서양 포르노에 비해 유난히 남성적 관음증에 투철하고 여성에게 가학적이다. 나가사키 미나미, 후부키 안나, 스가와라 치에 등 여성감독 3인의 존재는 소수이지만 그래서 각별해 보인다. 이들의 작품에선 아무래도 여자의 성에 대한 환상과 욕망이 엿보인다. 후부키 안나의 <레즈비언 풀코스>에는 제목 그대로 남자배우가 등장할 틈이 없다. 스가와라 치에의 <숫처녀 성기대연구>에도 삽입 섹스는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섭외한 여자들에게 남성의 성기를 보여주고 스케치할 기회를 마련하며, 남성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 관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