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포스터에 대해 몰랐거나 오해했던 것들 [3]
2004-10-19
글 : 박혜명

다양한 버전들 - 길가에 깔리면 작업 끝 아냐?

이렇게 물을 포스터 디자이너는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포스터 디자이너들은 영화에 관한 비주얼을 ‘총체적으로 책임질 것’을 영화사와 계약하는 사람들이다. 시나리오북에서부터 보도자료, 극장 전단지, 지면광고, 버스 및 지하철에 게시될 옥외광고, 그리고 인터넷 광고까지 일체를 작업한다. 지면광고도 신문이냐 잡지냐에 따라, 신문 4단에서 10단에 어느 사이즈냐에 따라, 잡지 1페이지냐 2페이지냐에 따라 사이즈를 달리 작업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개봉 한달 전 티저 비주얼 단계, 개봉 임박해 메인 비주얼 단계, 개봉 뒤 제3의 비주얼 단계로 갈 때 디자이너는 매번 작업한다. 심지어 영화가 너무 훌륭하면 영화제 초청에 각종 해외 프로모션건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를 대비해 해외 프로모션용 포스터와 보도자료를 작업해놓는다. <박하사탕>을 작업한 김혜진 실장은 “그 영화만 1년 넘게 했다. 아무리 해도 안 끝났다. 매일매일 해도 할 게 너무 많았다”고, 그 길고 길었던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계속 더 많은 인력과 손잡고 더 복잡한 작업 단계를 거쳐 정교한 소통이 가능한 포스터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갈수록 비주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요즘의 경향은 이 정교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89년 <애란>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수백편의 한국영화 포스터 촬영작업을 해온 손기철 사진작가는 “현재 영화의 주관객층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을 들면서 “그들이 보는 패션지만 펼쳐봐도 훌륭한 광고들이 정말 많다. 그런 데에 관객의 눈이 길들여졌으니 영화 포스터가 패셔너블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많은 마케팅 관계자들과 디자이너, 사진작가들이 포스터 시안과 컨셉을 논의할 때 각종 사진자료를 방대하게 참조한다. 관객들의 높은 눈높이를 맞춘다는 대원칙은 <나쁜 남자> <장화, 홍련> <스캔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주홍글씨> 등처럼 우아함으로, <몽정기> <오! 해피데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처럼 아기자기한 꼼꼼함으로, <챔피언>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 <가족> 등처럼 간결우직함으로, <박하사탕> <반칙왕> 등처럼 독창적으로 다양화되어 나타난다. 이날 <사과>의 제작팀도, 포스터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대변할 만한 광고컷을 콘티북에 붙여놓고 있었다. 트렌드의 최첨단을 반영하는 광고. 그것에 길들여진 관객. 그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영화사. 관객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예술에 대한 분명한 욕구를 가진 디자이너, 그리고 사진작가. 포스터는, 이들간의 역학관계가 가장 발전적으로 나아간 순간의 결과물인 셈이다.

:: 관계자들이 말하는 영화 포스터의 정의

단 한컷에 드라마가 담겨야 한다

“포스터란 비주얼로 하는 마케팅이다. 영화와 관객을 소통시켜주는 제1의 매개체. 그리고 최전방에서 관객과 만나는 전도사 같은 거다. 왜, 전도사들이 ‘하나님을 믿어라’ 하는 것처럼 포스터도 ‘이 영화를 사랑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나쁘면 포스터가 사이비란 얘기를 듣지.” - 배광호 실장(디자인사 그림커뮤니케이션·<8월의 크리스마스> <동갑내기 과외하기> <와일드카드> <인어공주> <썸> 등)

“영화를 한장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 영화는 동영상인데 그것을 단 한장의 정지스틸로 잡아냈을 때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포스터엔 드라마가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 박혜경 실장 (영화사 봄·<쓰리> <장화, 홍련> <4인용 식탁>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달콤한 인생>)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도구. 예고편과 함께 영화를 홍보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무기 중 하나. 둘 중의 우열은 가리지 못하겠다. 영화에 따라 어떤 건 포스터의 덕을 많이 보기도 하고, 예고편의 덕을 많이 보기도 하니까. 기본적으로 포스터는 인지도 상승에, 예고편은 선호도에 많이 작용한다.” - 장보경 과장 (영화사 싸이더스·<정글쥬스> <무사> <말죽거리 잔혹사>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영화 포스터란 포장지 같은 것이다. 이런 제품이 있습니다, 라는 걸 다른 어떤 홍보물들보다도 가장 처음에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풀고 싶게 만드는 것. 그냥 상품광고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영화 포스터는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더 중요하다.” - 임혜선 팀장(영화사 LJ필름·<라이터를 켜라> <주홍글씨>)

“그것에 대해 고민을 계속해왔는데, 포스터는,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존재같다. 그 정체성을 단 한장으로 구현하는 것. 그래서 가장 좋은 마케팅은 영화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김상만 실장(디자인사 스푸트닉·<해피엔드> <바람난 가족> <범죄의 재구성> <주홍글씨> <청연> <여자, 정혜> 등)

“영화는 길다. 그걸 단 한장으로 설명해야 하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 포스터가 작품의 힘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화가 보존되게 만드는 힘.” - 김혜진 실장(디자인사 꽃피는 봄이 오면·<파이란> <나쁜 남자> <몽정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귀여워> <주먹이 운다> <태풍태양> 등)

“굉장히 커머셜한 작업이란 느낌은 들지만, 포스터 컷은 단순히 광고가 아니라 순수예술의 영역에도 어느 정도 걸쳐져 있다. 강영호 사진작가는 ‘영화를 함축한 한장의 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이재용 (사진작가·<무사>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천년호> <말죽거리 잔혹사>)

“그게 예술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영화적이고를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지나가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전문가 말이, 지나가는 사람이 포스터를 보고 스치는 데 평균적으로 0.5초 걸린다고 한더라. 진짜 관심있어서 봐야 3∼4초다. TV광고를 봐도 스무개 지나가면 한두개 겨우 기억나듯이, 영화 포스터도 그렇게 기억에 남는 한두장이 어쨌든 가장 훌륭하다고 본다. 사진만 좋다, 디자인만 좋다,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카피와 제목, 다 함께 가는 것이다.” - 손기철 (사진작가·<애란> <결혼 이야기> <하얀 전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남자는 괴로워> <손톱> <편지> <아나키스트>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황산벌> <달마야, 서울가자> <귀신이 산다> 등 약 1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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