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SBS 새 대하사극 <토지> 주연 김현주
2004-11-09
글 : 손원제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내면 온기 품은 원숙한 여성상 보일래요”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떨군 황금 들녘 사이 논둑길로 화사한 연주홍빛 치맛자락을 살짝 쳐든 채 김현주(사진)가 걸어온다. 입가에 살짝 맴도는 미소가 단아하다. “컷!” 이종한 피디의 얼굴에도 만족스런 기색이 스친다. 지난 5일 에스비에스 새 대하사극 〈토지〉(토·일 저녁 8시45분)의 타이틀롤 촬영이 한창인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세트장. 김현주는 차분했다. 예의 선해 보이는 눈빛에선 독기 서린 서늘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토지〉의 주인공 서희 역을 맡았다.

박경리 원작의 〈토지〉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는 이번이 세번째다. 1979년엔 28살의 한혜숙이, 87년엔 20살의 최수지가 김현주에 앞서 서희를 연기했다. 모두 〈토지〉를 통해 당대의 히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최수지는 어려서 부모님과 할머니를 잃고 재산마저 빼앗긴 뒤 복수에 나서는 명문가 종녀의 서릿발 같은 분위기를 그려내 ‘서희’ 상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현주는 “최수지의 서희는 완전히 머리에서 지워 버리라”는 이 피디의 특명을 받았단다.

“기존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서희는 냉철하고 강하면서 독한 이미지죠. 하지만 그때는 소설 5부의 내용을 모두 담지 못한 상태였어요. 이번에는 드라마 전체의 주제가 집약된 5부까지 다루죠. 나이가 든 서희는 단순히 독한 여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길상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내면의 따뜻함을 간직한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물론 젊어서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저도 거울 보며 연습해 보니까 의외로 그런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한혜숙·최수지 이어 세번째 서희 분위기 살리려 완간원작 몰입중

소설 완간 이후 첫 드라마화 시도인 만큼, 김현주의 ‘서희’야말로 〈토지〉의 진정한 주제를 체현한 주인공으로 기억될 수 있게 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하다. “어려서 최수지씨가 나오는 〈토지〉를 보면서 여자라면 한번 해볼 만한 역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제가 연기하는 서희를 본 후배들이 나중에 김현주를 본받아야지 하도록 끌어가고 싶어요.”

그러나 주변에선 여전히 “부담 되겠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나이도 10대에서 50대 후반까지 이어지게 돼요. 하지만 원작에도 서희의 미모가 출중하다고 나와 있으니, 자연스럽게 하면 되지 않겠나 싶어요. 노년 서희 모습으로 분장한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귀여운 할머니’라고 하던데요.”

김현주는 요즘 21권짜리 소설 〈토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희에 몰입하기 위해 소설 속 분위기에 잠겨 보려는 것이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서희의 재산으로 표현되는 땅을 돌아본 적이 있어요. 내 땅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던데요. 꼭 재산이라서가 아니라 풍성한 느낌 있잖아요.” 15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50부작으로 만들어지는 〈토지〉는 오는 27일 첫 회가 방송된다. 유준상이 서희의 남편 길상을, 이재은이 봉순 역을 맡았으며, 현재 18회까지 촬영이 이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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