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SBS ‘문예피디’ 이종한의 <토지>
2004-12-17
글 : 김진철 (한겨레 기자)
‘생명사상’ 과 사계절 영상미의 접목

요즘 주말 밤 ‘9시 뉴스’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토·일요일 밤 8시45분 방송되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토지> 때문이란다. 지난 12일 6회까지 나온 <토지>가 벌써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원작 대하소설 <토지>의 뛰어난 작품성과 재미를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가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김현주나 유준상 등 주요 연기자들이 아닌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어 <토지>의 ‘폭발력’은 본격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79년과 87년에 이어 세번째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원작이 ‘대단하다’는 것쯤이야 당연한 요인일 터다.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하게 요동쳐온 한국근대사를 21권에 담은 이 대작은 빛나는 역사의식과 밑바탕을 면면히 흐르는 ‘생명 사상’이 작품성을 담보한다. 이에 더해 맛깔진 말발·글발에 재밌는 이야기까지 얹혀 완성됐다.

1년 넘는 준비기간·연기파 배우, 일부 미숙한 사투리는 ‘옥에 티’

일단 틀은 갖춰진 것. 그러나 영상을 입히고, 이야기를 드라마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은 오롯이 연출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연출자 이종한(52) 피디(위 사진)의 내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피디는 이른바 대표적인 ‘문예 피디’다. 작품성 높은 문학작품들을 드라마로 구현해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왔다. 에스비에스 창사초기 방영웅 원작의 <분례기>(1992년), 이문구 원작의 <관촌수필>(1993년)과 2000년 방송되며 높은 인기를 끌었던 박영한 원작의 <왕룽의 대지>가 그 예다. 이 피디는 작가의 혼이 담긴 원작의 본질과 문학성을 텔레비전 영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 피디는 “갈수록 함부로 시작할 게 아니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풍부한 상상을 하는데, 드라마는 상상 속의 장면을 영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새로운 창작이 되어야 하지요.”

무엇보다 그는 원작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지>는 세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가 ‘생명 사상’이고, 둘째가 ‘한’이며, 셋째가 ‘자연’이죠. 모든 생명을 가진 이들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이 ‘생명 사상’이고 동학 사상인 겁니다. 유한한 인간은 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토지>에는 자연도 담겨있습니다.” 소설 <토지>가 있는 그대로 영상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 피디가 직접 느끼고 재해석한 <토지>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연출자가 원작에 끌려가지 않고 원작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독립적인 재해석에 나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이야기’도 ‘영상’도 모두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이 피디의 연출력이 초기부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토지>의 힘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평가다. 지난 봄 촬영된 3·4회와 지난해 가을 찍은 6·7회 등 우리 나라 4계절의 영상미가 아름답게 구현된 것이나 빠른 속도감 속에서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등이 그의 연출력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1년이 훌쩍 넘는 철저한 준비기간과 김갑수·김여진·김미숙·유해진·박지일 등 ‘얼굴’ 아닌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들 등이 큰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옥에 티’가 있다면,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부 출연자들의 미숙한 ‘사투리’ 연기일 게다.

이제 6회를 마친 <토지>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이룰지, ‘9시 뉴스’들은 어느 수준의 비명을 지르게 될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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