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류 지속될수 있을까’ 현지 경험 대사들 전망
2005-02-22
(왼쪽부터) 황용식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이영준 주 말레이시아 대사, 문하영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

황용식 “당장 수익 없어도 다방면 지원을”
이영준 “남아시아 깔보는 풍조 사라져야”
문하영 “드라마 요소마다 코리아 홍보 필요”

한류 열풍 진짜일까? 최근 일본에서 보아의 <베스트 오브 소울> 음반 선주문량 80만장이 매진됐다. 또 ‘욘사마’는 일본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에서도 국빈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홍보전략 부재와 한탕주의로 금새 시들해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중앙아시아까지 뻗어간다는 한류,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한국인들의 보상심리가 덧입혀져 과장된 건 아닐까? 과연 지속될 수는 있을까?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황용식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지난 15일 외교부에서 만나 현지에서 보고 들은 한류를 바탕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구본우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이 사회를 맡아줬다.

나이 차별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비, 보아, <겨울연가>에 공감하는 지긋한 외교관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겉도는 딱딱한 이야기들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대사들은 의외로 구체적인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사회:구본우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구본우 문화외교국장(사회) | 여러 나라에서 오신 대사님들과 한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뜻 깊습니다. 우선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끼신 한류의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특히 대만은 한류의 원조 가운데 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황용식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 한국 문화상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건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만에선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서 광고라든지 파생 상품 판매, 관광으로 연결되고 있어요. 지난해에 한국에 온 관광객의 27.4%가 대만, 일본, 중국인이었고, 한국 수출업자들의 66.6%는 한류가 수출에 기여한다고 답했습니다. 2003년 한국의 드라마 해외 수출 가운데 24%를 대만이 차지했죠. 대만엔 방송채널이 100개가 넘는데 지난해 6월과 10월에 방송된 <대장금>의 시청률은 6%로 최고였습니다. 외교관 모임에 가면 부인들이 아홉시 전에 집에 가서 대장금을 봐야 한다고들 했죠. 지난 선거 때는 한 여성 후보가 대장금에 나오는 한복을 입고 유세했습니다. 정치에서도 한류를 활용하고 한국 옷과 음식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죠. 또 1992년 단교한 뒤 한국 이미지가 대단히 나빴는데 한류 뒤 바뀌었어요.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대만이나 중국, 일본처럼 한류 열풍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상도> <올인> <다모>를 내보냈고 요즘엔 대장금까지 방영하고 있죠. 주로 황금시간대에 배정돼 있고 화교, 이슬람 구분 없이 사랑받고 있어요. 특히 2002년에 소개된 <겨울연가>의 인기가 폭발적인 건 틀림없습니다. 제가 2003년에 말레이시아 장관을 예방하러 갔더니 비서부터 한국 대사라고 반기더군요. 자기가 겨울에 꼭 한국에 가겠다면서요. 그곳 과학기술부장관은 겨울연가의 영상기술까지 설명을 하더라고요. 페낭에서는 국왕과 당시 부수상이 참석한 행사 중에 사회자가 겨울연가 주제곡을 부르겠다고까지 했어요. 귀빈들이 다 절 쳐다보더라고요. 그때까지 겨울연가를 안 본 저는 창피해서 며칠동안 밤을 새워 봤습니다. 하지만 대만 등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중 음악은 거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연가 주제곡이 묶인 음반은 나와있지만 인기 가수가 초청되고 공연하는 이벤트는 미약하죠. 우리 음악이 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또 음반 불법복제가 워낙 많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이슬람 사회라서 밤 문화가 없어요.

황용식 "단교뒤 실추된 이미지 개선 큰몫"
이영준 "화교·이슬람 구분없이 사랑받아"
문하영 "성실·근면 고려인 한류문화 기반"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 | 이제까지 러시아와 인도의 영화나 드라마가 강세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류는 한마디로 폭발적입니다. 지난해 겨울연가를 방송했는데 시청률이 60%를 기록했어요. 사상 처음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각국 대사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생방송에 나갔는데 사회자가 한국 대사가 나오자 청취자 질문이 보통 때보다 3배 더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연가 때문이랍니다. 또 일요일 저녁 8시 황금시간대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가게 됐는데 그것도 한류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한류는 우연한 현상이 아닙니다. 첫째로 한국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요. 중앙아시아 젊은 사람들의 꿈이 아파트를 사서 대우차 타고 삼성, 엘지의 냉장고, 텔레비전을 들여 놓은 뒤 겨울연가를 보는 거라고 하더군요. 한국 기업의 가전제품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를 정돕니다. 두번째로 거기엔 20만명에 달하는 고려인 사회가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하다고요. 이 분들이 한류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죠. 또 하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굉장히 가족적이고 폭력을 싫어해요. 잔잔한 대가족 분위기를 좋아해서 우리 이미지와 맞죠. 우즈베키스탄에선 연평균 산업연수생 3천여명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데 경쟁률이 100대 1이에요. 한국에서 3년 살아 2만~3만달러 벌면 아파트 사고, 결혼하고 가게까지 차리죠. ‘코리안 드림’이 있기 때문에 한국어도 많이 배웁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일 좋은 대학 3군데에 한국어 학과가 있고 커트라인도 높죠.

구 | 덧붙이자면 현재 한류, 특히 드라마는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확산되고 있어요. 중남미에선 2001년, 2002년 <별은 내 가슴에> <이브의 모든 것>이 큰 인기를 끌었죠. 이집트에선 <가을동화>가 그렇고요. 먼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상업주의에 기반을 두고 한국 문화상품이 진출했다면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선 정부의 구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판권을 사서 현지인에 맞게 더빙 입혀 무료로 배포한 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문 | 중앙아시아아는 남아시아와 달리 돈이 없어서 한국 문화상품을 수입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말씀하신대로 정부 구실이 중요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겨울연가의 준상이와 유진이가 친척 같다고 이야기해요. 이곳 외무성 교역국장은 겨울연가를 4번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배용준씨나 최지우씨를 한국 정부에서 문화홍보대사로 위촉해 보낼 수는 없나요?

구 | 정부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요. 연기자들이 워낙 바쁘고 비싸니까요.

문 |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배용준씨가 너무 비싸면 최지우씨를 섭외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른 대사들이 “최지우씨도 못지 않다”며 웃었다. 대사들은 예전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현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결국 필요해서 봤는데 재밌더라고 했다.

황 | 대만엔 자국 방송 쿼터제 같은 게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이죠.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일본, 홍콩 드라마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인기인 건 한 마디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연기도 좋은데 소재도 굉장히 대만 사람들이 공감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장금에 나오는 어의나 궁중 권력 암투는 대만 사람들도 자기 역사에서 다 아는 거죠. 한국 드라마에서 그런 게 나오니까 공감하면서도 신기해해요. 대만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 유교적 가치관이 더 잘 보존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주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요? 거기도 고부 갈등이 똑같이 있는데 한국 드라마에서 실감나게 표현하니까 끌리는 거죠.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건데 심리묘사가 섬세해서 한번 보면 그만 두질 못 한다고들 합니다. 또 한국 드라마엔 동양문화를 바탕으로 서구문화를 버무린 역동성이 있다고 합니다. 대만처럼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걸 신기해 하죠. 일본 드라마에 식상했는데 한국 드라마가 새로운 기쁨을 줬다는 거죠.

구 | 말씀하신 대로 감정이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때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다 잘되는 건 아니죠.

황 | 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1회분을 1만~2만달러 정도에 삽니다. 대장금은 촬영할 때 계약해서 1회에 1만달러로 고정됐죠. <올인>은 1회에 1만8000달러에 들여왔지만 실패했습니다. 대만에서 한류를 움직이는 중심은 역시 40~50대 주부들이에요. 섬세한 사랑, 가족 관계가 먹히지 도박이나 남성적인 소재는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도 잘 안됐어요.

구 |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겨울연가 방영 뒤 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시청자의 90%가 여성이었고 주부가 많았어요. 이들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애정,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 이집트 가치관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냈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다고 했죠. 이집트 국영방송사 쪽도 재방영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혹시 현지의 반일, 반미 정서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닌지요?

황 | 대만엔 반일감정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어로만 방송하는 채널이 있고 일본 자동차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죠. 역사적으로 볼 때 대륙보다 일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데 우리 정서와는 많이 다르고 문화도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문 | 중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아리랑 티브이가 나오는데 일본 채널은 없어요. 할리우드류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중앙아시아에선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폭력, 선정성,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상물은 엄격히 방영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겨울연가 <여름향기> <호텔리어> 등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하죠. 올인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올해엔 대장금과 <다모>를 방송하려고 하고 있죠. 일본 드라마는 불륜 등 너무 나갔다는 의견이 많아요. 이에 비해 한국 드라마는 순수하고 절제됐다고 평가하죠.

이 | 말레이시아엔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서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어요. 한국 문화가 서양과 동양을 잘 섞고 있다고 보죠. 일본 드라마에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 이국적이긴 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들 해요. 한국의 적당한 서구화와 공동체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죠. 한국 드라마의 상황이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해서 친숙하다고들 합니다.


대사들은 한국 드라마에 스민 가족정서, 유교적이면서 서국적인 문화가 현지 주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고 했다. 한류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 말레이시아 대사는 방글라데시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좋다며 이슬람 문화권까지 영향력을 넓혀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구 | 그런데 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상업주의에 치우쳐 홍콩 드라마처럼 한번 확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황 | 홍콩 영화나 드라마가 퇴조한 이유는 소재가 너무 단조롭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섯 번 열번 보면 식상하죠. 우리 드라마도 삼각관계 등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줄거리가 다 다르고 재미도 다 다르다는 게 현지 평가입니다. 또 우리가 유리한 건 중국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더 많다는 거죠. 그리고 일본보다 더 과감한 투자를 하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 | 드라마는 시나리오라는 문학적인 요소와 패션, 음악, 촬영기술까지 가미된 첨단 복합 산업이죠. 이런 요소들이 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드라마가 잘되고 우리는 그 수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금방 수그러들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중앙아시아엔 한국 기반이 있어 오래 갈 겁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거죠. 한국 문화에서 드라마가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미술가들이 현지인과 교류하고 같이 전시도 하도록 돕고, 조수미씨나 신영옥씨 등도 현지 오페라 가수들과 합동 공연하도록 주선해 볼 수 있죠. 전통 있는 예술단도 보내고요. 다양하게 접근해야만 오래갈 수 있어요. 문화의 폭과 깊이가 중요하죠. 또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사회가 상당히 고립돼 있어요. 한류를 고리 삼아 그 분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민족적 정서나 정체성을 북돋울 수도 있을 겁니다.


이영준 “경제적 풍요 대중 문화욕구 다양 다른분야 진출해도 성공할 것”
황용식 “작품마다 과감한 투자·소재다양 ‘반짝’ 홍콩영화와 달리 오래갈 것”
문하영 “‘한국차에 한국 TV로 겨울연가 보는것 중앙아시아 젊은이들 꿈”

이 | 말레이시아에도 홍콩, 중국, 대만 드라마가 많이 수입됐는데 한국 것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죠. 최근 말레이시아 텔레비전3에서 드라마 선호에 대한 즉석투표를 했는데 한국이 35%, 인도네시아 31%, 말레이시아 20%, 기타가 14%로 나왔어요. 한국관광공사 쿠알라룸푸르 지사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말레이시아인 19.1%가 드라마나 영화로 한국을 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물론 열기를 이어가려면 겨울연가 같은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여기에만 기대할 수는 없어요. 말레이시아는 20년 전부터 동방정책을 펴왔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배우자며 매년 공무원, 학생들을 한국에 보냈어요. 이런 경험을 한 2천여명이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장관이나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해엔 외교통산부 산하 국제협력단 지원을 받아 동창회도 열었죠. 거기서 관악산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둥 한국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더군요.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료도 보내주고 지원해야 해요. 아쉽게도 한국 안에선 아직도 아시아 경시 풍조가 있습니다. 특히 문화 부문에서 그렇죠. 유럽에는 유명한 공연단도 많이 보내지만 말레이시아엔 잘 안 보내죠. 이런 풍조가 사라져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대중이야 사물놀이 등 한국 전통 음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친한파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요. 그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면 한류의 뿌리를 튼실히 할 수 있죠.

황 | 국제 경쟁력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우선 훌륭한 연기자가 많이 나와야겠죠. 한국엔 전문대 합쳐 영화 관련 학과에서 매년 1000여명씩 배출하니 별 문제 없다고 봅니다. 둘째는 자금력이죠. 현재 한국이 일본보다 드라마제작에 더 많이 투자해요. 세번째는 매개체와의 공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상품을 만들더라도 방영 안하면 보통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죠. 매개체에도 이윤이 남아야 합니다. 물론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겠지만요. 한 대만 방송국의 한국 드라마 방영시간을 보면, 2001년 467시간에서 2002년 903시간으로 늘었다가 2003년 811시간, 2004년 356시간으로 줄었어요. 그 이유는 한국 드라마의 중국어 더빙권을 한국 쪽에서 회수했기 때문이죠. 그 전엔 현지 방송국이 더빙권을 되팔아 수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내보내는 대만 방송국에선 최근에 이익이 안 남는다고 볼멘소리를 많이 냈어요. 서너배씩 값을 올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하지만 아직까진 엄살인 걸로 드러났습니다. 대만 신문 보도를 보면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고 광고만으로도 10초당 100만원에 가까운 수입을 얻는다고 해요. 또 디브이디, 책자 판매로 부가 수익을 올리고 있죠. 그러니 방송이 가능했던 거죠.

이 | 말레이시아 대사는 아시아 경시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고 문 우즈베키스탄 대사도 거들었다. 이어 대사들은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출하려 하기보다는 문화교류에 방점을 찍어야 현지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한류가 계속 받아들여질 거라고 내다봤다.

구 | 말씀하신대로 한류가 한국에 대한 관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북돋우려면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요?

황 | 여건 조성을 위한 대담한 지원책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문화원 설치가 그 가운데 하나예요.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가 퍼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수익이 안 맞더라도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처럼 문화원에 우수한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 한글을 가르치고 투자해야죠. 언어 보급이 문화산업 진출의 인프라가 될 테니까요. 또 드라마 이외 각 방면의 문화상품에도 투자해 고급화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뮤지컬 명성황후가 그렇죠. 한국 순수예술이나 문화 일반의 상품화를 시도해볼 수 있어요. 사물놀이, 판소리 등이 국제 사회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특정 인사를 대상으로 단기간 공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장기적인 공연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죠. 덧붙여 관광산업으로 연결하려면 시설, 안내원의 자질 향상이 병행되어야 해요. 한국 방문했던 대만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중국처럼 코스로 나오는 줄 알았다가 잘 챙겨먹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영리 위주로만 안내해서 불쾌했다는 지적들이 많아요.

이 | 말레이시아엔 중국계 25%, 말레이계 60%, 인도계 10%가 어울려 삽니다. 그래서 세계화에 유리하죠. 이슬람 나라이지만 외국문화를 잘 받아들여요. 예전에 아세안 문화장관 회의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을 때 한·중·일 문화장관과 예술단도 초청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정동극장 팀이 왔는데 아주 휘어잡았습니다. 지금도 카델 문화장관은 그 공연을 잊지 못하고 있죠. 난타가 왔을 때도 열광했고요. 말레이시아는 경제적으로 살만해서 대중들의 문화 욕구가 폭발적이에요.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2001년 5만5848명, 2002년 8만2720명, 2003년 9만623명으로 껑충껑충 뛰고 있어요. 고급 문화 팀들이 와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고 음악 등 다른 분야도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 | 삼성, 엘지 등 한국 기업들이 자사 홍보 전략의 하나로 한국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이런 구실을 장려해야합니다. 중앙아시아에도 한국 문화원이 없는데 설치가 늦었어요. 문화원에 100석 정도 되는 영상실 만드는 거 돈도 많이 안 듭니다. 거기서 영화 상영하고 그러면 굉장한 홍보 효과가 있을 거예요. 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할 필요가 있어요. 너무 상업적인 이미지만 심지 말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걸 알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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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 그런데 특정 지역에선 한류가 큰 인기를 끌면서 부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현지인들이 위협감을 느끼며 거부반응을 조금씩 보이고 있죠. 이런 부분을 완화해가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부도 한류가 활기를 띠고 있는 나라의 문화를 한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 나라들의 우수 영상물을 수입해 방영하는 거죠. 다른 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게 한류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일 겁니다.

황 | 네. 말씀하신 거부반응은 나타나고 있죠. 대만에선 한국 배우들은 다 성형수술해서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느니 이런 말들이 돌며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만 연기자들의 반발도 있고요. 아무래도 자신의 예술 산업이 위축되니까 실속을 챙기자는 움직임이 일죠. 얼마 전엔 연예계 엑스파일을 대만 언론에서 공개해 한국 배우가 이런저런 추문이 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저희 쪽에서 항의도 했습니다. 대만 문화가 연예계에 대해선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마음대로 이야기해서 이런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류에 대해 보호주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죠. 과거 한국에서 일본, 중국 문화를 개방할 때 그쪽 문화가 범람해 우리 문화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아니었죠. 개방을 통해 우리 문화의 체질을 높일 때입니다.

문 | 말레이시아나 중앙아시아도 다 문화민족입니다. 우즈베키스탄도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자부심이 대단하죠. 일방적인 진출은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한국 가수가 우즈베키스탄 가수와 함께 콘서트를 열고, 미술전시를 해도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또 그쪽 예술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류할 수 있는 거고요.

이 | 네.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때 한국 예술단 등이 많이 방문하고 또 말레이시아 예술단도 많이 초청해야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연예인의 이미지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거니까 한류가 바로 한국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도록 내버려두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말레이시아가 ‘진짜 아시아’, 홍콩이 ‘아시아의 세계도시’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류와 별도로 나라 홍보 전략이 필요해요.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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