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드라마 시장 급팽창 “황금알 잡자” 난타전
2006-01-19
글 : 김진철 (한겨레 기자)
방송 3사 경쟁 격화…외주사 가세

방송 드라마를 둘러싼 경쟁이 유례없이 치열하다. 지상파 방송 3사 사이의 드라마 전쟁이 격화되고, 외주제작사와 연예기획사까지 끼어들어 드라마의 주도권을 쥐려고 총력을 다하고 있다. 방송의 주수입원인 광고에 미치는 드라마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드라마의 수익구조가 다변화하면서 드라마가 더욱 큰 황금알을 낳을 거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성 없는 전쟁=지상파 3사의 드라마 경쟁은 총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전쟁과 다름없다. 지난해부터 승세를 이어온 한국방송과 추격전을 벌이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왕국 부활을 위해 발벗고 나선 문화방송의 싸움이다.

우선 양적 경쟁이다. 지상파 3사, 4개 채널이 일주일 내내 내보내는 드라마만 모두 25편, 50여시간으로 주말과 낮의 재방송까지 포함하면 주당 100시간을 훌쩍 넘어선다. 특히 모든 채널에서 드라마가 편성된 밤 10시대의 황금시간은 최전방이다. 여기에 지상파 3사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총력전을 기울인다. 월·화요일의 <안녕하세요 하느님> <늑대> <서동요>와 수·목요일의 <황금사과> <마이걸> <궁>은 시대극, 트렌디극, 퓨전 사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신인과 스타급 연기자 등을 내세워 전투를 벌이고 있다.

밖엔 한류·안엔 DMB
방송사 주당 100시간 물량경쟁
미니시리즈 회당 80분 기형편성
외주사 저작권 확보 도전

<마이걸>

그러나 전쟁의 방향은 드라마의 지평을 넓히지 못한다. 동어반복으로 자원을 낭비하거나 선정적인 눈길끌기 경쟁으로 시청자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늘었을 뿐이다. 몇 안 되는 단막극과 청소년 드라마는 심야나 이른 아침으로 밀려나고, 미니시리즈들은 방송 시간을 80분까지 늘리는 기형적 편성이 횡행하는 아수라장이다.

저작권 확보 작전=전장에 외주제작사와 연예기획사가 가세했다. 편성권이라는 강력한 재래 무기를 쥔 지상파 3사를 향해, ‘별’들을 앞세워 물량 공세로 돌진한다. 연예인과 피디와 작가 등 이미 ‘별’들은 대부분 손에 넣었으니 다음 목표는 저작권이다.

지난 5일 굴지의 드라마 외주사 대표들이 모여 새해를 ‘선전포고’로 열었다. 이들이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신현택 삼화프로덕션 회장은 “외주사가 저작권을 가져야 내실있는 드라마 제작을 위한 인프라도 구축할 수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종학프로덕션의 김종학 대표는 “(저작권이 주로 방송사에 귀속되는) 현재 구조가 지속되면 한류 산업화가 공염불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원 사격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드라마 저작권이다. 저작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한편, 앞서 경인방송 사업자 공모에 나선 ‘나라방송 컨소시엄’에 독립제작사협회를 2대 주주로 참여시켜 외주사의 저작권을 100% 인정받기로 양해각서를 맺음으로써 양동작전에 나선 터다.

이들이 전열을 가다듬어온 역사는 짧지 않다. 연기자들을 보유한 연예기획사들이 외주제작에 나서고, 외주사들도 매니지먼트 사업을 통해 연기자들을 확보해왔다. 최근 <프라하의 연인> 제작사인 올리브나인이 매니지먼트사인 스타즈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병력도 집결시켜 왔다. 스타급 피디 스카우트 바람에 이어 드디어 촬영감독까지 ‘전향’시키기 시작했다. <다모>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을 찍어온 문화방송의 김경철 촬영감독이 최근 사표를 내고 외주사인 엘케이제작단과 손잡았다. 제작 인력을 확보한 뒤 다음 순서는 방송사의 도움없는 드라마 단독 제작이다.

<늑대>

전쟁의 기원=여느 전쟁처럼 그럴듯한 명분이 빠지지 않으나, 역시 전쟁의 목표는 돈이다. 드라마가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날로 늘어가는 탓이다. 드라마를 잡는 쪽이 미래 방송·엔터테인먼트계의 강자가 되리라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 전쟁을 불렀다.

드라마가 밖에서는 한류 덕에 달러를 벌어들였고, 안에서는 디엠비(DMB)를 비롯해 아이피티브이(IPTV)·와이브로 등 우후죽순 솟아나는 뉴미디어로 돈줄이 될 예정이다. 부가수익도 다양해진다. 드라마 촬영지가 관광지로 개발되고 스타 마케팅을 통한 출판사업 등도 활발하다. 저작권 보호 강화 물결도 드라마의 2차 저작을 통한 수익 확보로 이어질 것이다.

방송 광고는 올해부터 시청률 위주의 판매 방식으로 바뀐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내놓은 방송광고 판매제도 개선방안은 총시청률을 계약단위로 광고를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경쟁력이 가장 높은 드라마의 몸값이 더욱 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3파전은 더욱 뜨거워지고, 새 강자를 꿈꾸는 이들은 춘추전국의 도전에 나섰다.

전쟁 어디로 갈까=지상파 3사 전쟁의 승패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누가 앞장서 바꿔나갈 것인지, 또한 여기에 누가 가장 빨리 적응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제작 시스템뿐 아니라 드라마의 내용에서도, 시대를 이끄는 의제 설정 능력을 갖춰야 시장을 선점할 것이다. 지난해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부모님 전 상서>의 대대적인 성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작권은 외주사 쪽으로 상당 부분 이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대세다. 아직까지 외주제작 드라마에서 작가나 연기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방송사로부터 파견받기 때문에 ‘무늬만 외주’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지만, 연기자 섭외를 비롯한 제작 역량은 상당 부분 외주사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외주사의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공공성을 띤 방송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방송위원회나 문화관광부로부터 아무런 감시를 받지 않는 제도적 미비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외주사는 정해진 설립 요건이 없기에 제작 여건을 갖추지 않아도 문화관광부 신고만으로 세울 수 있게 돼 있다.

외주사와 연예기획사의 통합 움직임은 독점 금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독점금지법’에 따라 매니지먼트 회사의 프로그램 직접 제작을 금지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