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6개월>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영화를 들고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를 찾아온 일본 여성감독 다다노 미야코(33)는 한국의 방은진 감독처럼 배우 출신 감독이다. 눈썰미있는 관객이라면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다케시의 의붓딸을 연기했던 그를 기억할 것이다. 이밖에도 츠카모토 신야, 구로사와 기요시, 야구치 시노부 등 유명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임신 36개월>은 다다노의 감독 데뷔작이다.
“대학때 영상 미술을 전공했지만 배우나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본 적은 없어요. 우연히 배우를 하게 됐고 아이 낳은 친구를 보면서 문득 출산이라는 소재가 떠올라 시나리오를 써봤죠. 일반적으로 임신이나 출산은 힘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이를 낳은 친구는 이전보다 아름답고 행복했거든요. 재미삼아 지인들에게 보여줬다가 프로듀서를 소개받아서 3년에 걸쳐 완성했어요.”
<임신 36개월>은 뱃속에 9개월의 아기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부부와 뱃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아기의 이야기다. 외도를 하면서 아내의 임신에는 무관심하던 아빠가 철이 들고, 홀로 불안해하던 엄마가 아빠와 소통을 온전히 하게 될 때 아이는 뱃속에서 나와 세상을 뛰어다닌다. 엄마, 아빠뿐 아니라 다른 등장 인물들도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나간다. 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과 탄생은 어린 아이게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세상이 점점 더 빨리 돌아갈 수록 사람들은 시간을 쫓아가기만 바쁘고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구요.”
배우가, 그것도 ‘여배우’가 감독을 하겠다는 데 주변에 편견어린 시선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제가 영화를 만들겠다니까 처음엔 다들 웃고 넘어갔어요. 최근 일본에서 여성감독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성 감독은 소수에 불과하죠. 그렇지만 그 편견이 반대로 영화를 만드는 데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보통 영화현장은 남성 중심의 수직적 관계로 움직이는데 이 영화에서는 반대였죠. 프로듀서부터 배우, 스태프까지 반 이상이 여성 인력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구요.”
영화화된 <임신 36개월>을 소설로 옮기며 소설가로도 데뷔한 그는 지금 세번째 소설집 <달리는 집>을 집필중이다. “남자는 움직이는 ‘여행자’이고 여자는 서 있는 ‘집’이라는 통념”을 살짝 비튼 제목이다. 영화건 소설이건 ‘여성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여성이 쓴 이야기는 남성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남녀평등은 중요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차이점들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표현해나가지 않으면 ‘남녀 평등’이라는 말은 여성을 속일 수 있는 그저 아름다운 구호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그는 앞으로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 소설가 등 지금 가진 직함을 하나도 버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이 영화의 제작자 구사카베 게이코가 “기회만 온다면 우주비행사가 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이 젊은 여성의 혈기와 배짱을 추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