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상 밖으로>와 닿아 있는 로드무비, <비단구두>
2006-06-20
글 : 김나형

그저 그런 영화감독 만수(최덕문)는 이유도 없이 사채업자의 사무실로 끌려온다. 조폭 두목은 그에게 “치매기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고향인 개마고원에 데려다달라”고 협박한다. 영화감독은 뭐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영화 세트처럼 적당히 만들어낸 공간에 데려가 사진 한장 박고 데려와달라는 것이 그의 논지다. 억지 춘향이 된 만수는 배 영감(민정기)을 모시고 조폭 두목의 수하 성철(이성민)과 남한에 가상 개마고원을 만들어줄 스탭·배우과 함께 여정에 오른다.

<비단구두>는 여균동 감독의 데뷔작 <세상 밖으로>와 닿아 있는 로드무비다. <세상 밖으로>의 두 탈옥수는 딱히 잘난 놈도 딱히 나쁜 놈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종류의 인간이다. 뭔가 해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사는 건 늘 그저 그렇다. <비단구두>의 만수도 마찬가지다. 만수가 파타고니아에 가겠답시고 여행사에 들렀을 때 여행사 직원은 ‘별 거지 같은 게 다 와서 꼴값이야’ 하는 듯 꼬나본다. 안 그래도 구질구질한 삶인데 원치 않은 일에 말려들고보니 만수의 분노는 폭발한다. “내가 잘못한 게 뭐야! 잘못한 게 뭔데 왜 이렇게 쫓겨 살어? 영화 망한 게 내 탓이야? 영화 잘되면 나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진대? 깡패 새끼 아부지 소원 들어준다고 무슨 내 소원까지 다 이루어진대?” 그러나 그는 이 황당한 여정을 통해 “나는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고 외치게 되는 중차대한 변화를 겪는다. 더불어 어렴풋한 변화를 겪는 그 순간 모시고 가던 배 영감을 잃어버리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처한다.

<비단구두>는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진 여균동 감독의 복귀작이며 영화진흥위원회와 KBS가 함께 지원하는 방송영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만들어진 HD영화다. 지난해 8월경에 완성됐으나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동안 비슷한 소재의 영화 <간큰가족>이 먼저 관객을 만났다.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도 구조가 비슷하다보니 아무래도 신선한 느낌은 떨어진다. 영화 속 공간도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단조롭게 전개되어 다소 지루하다. 그런 때문으로 영화의 몸통이 되는 부분(이들이 여정을 떠나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에서 힘이 빠진다. 이 로드무비는 오히려 길 떠나기 전의 에피소드와 여정의 종착지가 훨씬 재미있다. 특히 연극 배우 출신 이성민의 무심한 경상도 깡패 연기는 매우 다부진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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