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들 [2]
2006-07-12
글 : 박혜명
글 : 정재혁

롱 시즌 레뷰 The Long Season Revue
가와무라 겐스케 | 일본 | 2006년 | 117분

1990년대 일본 시부야계 음악에 독특한 음색을 불어넣었던 밴드 ‘피시만즈’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2005년 도쿄, 나고야, 오사카에서 열린 ‘피시만즈 트리뷰트 공연’에서 따왔다. ‘롱 시즌’은 1996년 발매된 40분짜리 원트랙 앨범의 타이틀. ‘피시만즈’는 1999년 보컬이자 메인 작곡자인 사토 신지가 갑작스럽게 죽은 뒤,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밴드다. 영화는 ‘피시만즈’의 대표곡인 <いかれた Baby> <Melody> <Smilin’ Day, Summer Holiday> 등의 공연 모습과 ‘피시만즈’를 추모하는 후배 밴드들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추모의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 후배 뮤지션들은 아스팔트 위에 누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에 입을 맞춘다. ‘피시만즈’의 음악 세계를 모티브로 해 제작된 애니메이션도 삽입됐다.

‘세상의 끝이 보인다 해도 멈추지 않을 거야, 용기의 조각마저 보여주지 못한 채 죽는 건 누구입니까? 커다란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죽는 건 누구입니까?’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며 메시지를 전하는 <롱 시즌 레뷰>는 ‘피시만즈’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잘 정제되지 못한 애정이 영화를 들떠 보이게 한다. <쉘 위 댄스> <으랏차차 스모부>의 배우 다케나카 나오토가 출연해 ‘피시만즈’의 이력을 설명한다.

리커 Reeker
데이브 페인 | 미국 | 2005년 | 92분

인적이 드문 사막 부근의 도로, 아이와 단어 게임을 하며 운전을 하던 여자는 앞에 놓인 사슴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낸다. 앞유리를 빨갛게 덮은 피,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슴.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는 한대의 차. 갑작스러운 사고로 문을 여는 영화 <리커>는 슬래셔공포영화의 대표작 <13일의 금요일>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그레첸(티나 일만), 쿠키(에리엘 케벨), 넬슨(데렉 리처드슨), 잭(데본 구머살), 트립(스콧 와이트) 등 5명의 학생들은 호텔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에 불안해한다. 휴대폰 전파와 라디오 주파수는 잡히지 않고, 땅은 갑자기 흔들린다. 그리고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살인자. 순간이동도 가능한 이 살인자는 회전되는 커터칼을 팔에 장착한 채 5명의 학생들을 위협한다. 팔이 잘려나가고, 피가 터져나오며, 사람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공포 장르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 영화의 묘미는 탄탄한 드라마와 솔직한 연출에 있다. 화장실과 트럭에서의 살인장면은 쾌감을 주고, 영화 서두의 차 사고와 마지막 반전은 뫼비우스 띠처럼 묘하게 연결된다. 과감하고, 신선하며, 뒤끝이 없는 깔끔한 공포영화.

그리즐리 맨 Grizzly Man
베르너 헤어초크 | 미국 | 2005년 | 103분

미국 알래스카에 위치한 캐트마이 국립공원에서 회색곰과 13년간 동거생활을 한 남자.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늙은 곰 한 마리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 티모시 트레드웰의 ‘야생생활’을 그린 다큐멘터리 <그리즐리 맨>은 결코 ‘자연사랑’에 대한 예찬 영화가 아니다. <피츠카랄도>를 통해 선박을 끌고 산을 넘는 인간을 보여줬던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곰과 함께 생활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자연사랑’과는 다른 일종의 광기를 읽어낸다. “내가 약점을 보인다면, 나는 죽게 될 거다. 그들(곰)은 나를 끌고가서 물어뜯을 것이다. 나는 조각이 되어 죽은 채 발견되겠지. 그래도 나는 참고 견딘다”라는 트레드웰의 독백에선 야생생활에 대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트레드웰의 맹목적인 태도와 인간에 대한 헤어초크 감독의 비판적인 시선이 묘한 울림을 주는 영화.

골포스트와 립스틱 Goalposts & Lipsticks
버나드 샤울리 | 말레이시아 | 2005년 | 104분

<슈팅 라이크 베컴>의 말레이시아 버전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 <골포스트와 립스틱>은 ‘립스틱 소녀’ 푸트리의 성장영화다. 립스틱을 바르고, 쇼핑을 하며,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 외에는 관심없는 여학생, 푸트리.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자친구 에디의 결별 선언에 충격을 받는다. 풋살 선수인 에디가 “이제 치어리더는 지겹다”고 고백한 것.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샜던 푸트리는 이제 풋살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자아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골포스트와 립스틱>은 말레이시아 젊은이들의 좌충우돌을 그대로 쫓는다. 화장밖에 몰랐던 소녀 푸트리는 풋살을 시작한 뒤 활기를 찾아가고, 몰랐던 자신의 재능에 기뻐한다. 이후 스토리는 뻔한 진행과 엔딩. 하지만 영화는 특유의 쾌활함과 경쾌한 리듬으로 진부한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한 상상력의 향연

일본 컬트영화의 대가, 이시이 데루오 특별전

유난히 시리즈물 영화가 많은 일본에서는 거장들도 시리즈물을 통해 명성을 얻고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의 후카사쿠 긴지나 <남자는 괴로워>의 야마다 요지가 대표적이다. 이시이 데루오 역시 도에이의 시리즈물 <아사바리 번외지>로 명성을 얻었다. 다카쿠라 겐이 주연을 맡은 <아사바리 번외지>는 쓸쓸한 정취를 담은 현대적인 액션물로 60년대 초반 큰 인기를 얻었다.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난 이시이 데루오는 신도호에 들어가 <링의 왕자 영광의 세계>(1957)로 데뷔한 뒤 <황색지대> <흑색지대> 등의 <지대> 시리즈와 <여왕봉> 시리즈 등을 감독했다. 신도호에서 만든 이시이 데루오의 영화는 기존의 일본영화와는 다른 서구적인 취향의 액션오락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61년 도에이로 옮긴 이시이 데루오는 65년부터 67년까지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10여편을 만들면서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시이 데루오는 <도쿠가와 여계도>(1968)를 만들면서 묘한 길로 접어든다.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거느린 여자들이 기거하는 ‘오오쿠’에서 벌어지는 섹스와 음모의 향연을 그린 <도쿠가와 여계도> 이후 이시이 데루오는 이른바 ‘이상성애노선’으로 불리는 영화들을 양산한다. <도쿠가와 여형벌사> <이상성애기록 하렌치> <엽기여범죄사> <공포기형인간> <포르노 시대극 망팔무사도> 등 제목만 들어도 기묘한 영화들은 포르노, 호러, 스플래터, 다큐멘터리, 시대극, 연극 등 온갖 장르가 뒤엉키면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였다. 일각에서는 ‘여성 경시’와 ‘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하고, 어떤 영화평론가는 ‘일본영화의 최저선’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도에이는 이미 <아사바리 번외지>로 인정을 받은 이시이 데루오의 기묘한 영화들을 중단하지 않았다.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비판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이시이 데루오의 대표작은 <아사바리 번외지>라고 할 수 있지만, 가장 이시에 데루오다운 영화는 ‘이상성애노선’의 엽기적인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이시이 데루오에게 영향을 받은 스즈키 노리후미, 세키모토 이쿠오, 마키구치 유지 등에 의한 ‘핑크 바이올런스’ 영화들은 70년대에도 컬트적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누렸다. 90년대 들어 이시이 데루오는 초현실주의 만화의 거장 쓰게 요시하루의 작품 판권을 획득하여 <겐센칸 주인> <네지시키> 등의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99년작인 <지옥>은 옴진리교 등 현대의 악행에 분노한 이시이 데루오 감독의 일성이다. 영화적으로는 느슨하지만, 이시이 데루오 감독의 가치관이 적어도 ‘최저’가 아님을 보여준다.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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