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이다”
2007-10-09
글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첫 내한공연 하는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

2년 전 취소된 엔니오 모리코네의 한국 공연이 재성사되었다. 그의 대표곡들이 대형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함게 공연되고, 그의 오랜 음악 동료 피아니스트 길다 부타와 소프라노 수잔나 리가치가 함께할 예정이다. 그를 서면상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많은 감독과 작업을 했지만,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초창기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짝을 이루어 활동했다. (이전부터 동창생이던) 레오네 감독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
=레오네 감독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질은 감독으로서 어떤 것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 맞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음악이 그의 영화에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그와 단짝을 이루어 활동했던 것이다.

-‘무법자 3부작’ 이후에는, 촬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 나중에 사운드트랙을 녹음하는 대신, 미리 많은 음악을 만들어 촬영 중에도 사용했다고 들었다. 누구의 의도인가? 원래부터 기존의 할리우드식 영화음악 작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단 영화의 스크립트를 보고 감독에게 음악적인 방향을 얘기한 뒤 그가 수락하면 작곡에 착수하기 때문에 굳이 촬영되는 것을 보면서 음악을 만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게 내가 영화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대규모 관현악 중심 사운드 대신 여러 다양한 사운드들을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렉트릭 기타, 피콜로와 트럼펫, 하모니카, 퍼커션 등을 사용했다. 휘파람, 채찍소리, 종소리, 사람의 목소리(또는 코러스) 등의 일상적 소리도 음악이 되었다. 악기 및 소리들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고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가.
=나는 실제 소리와 음악적인 소리를 섞어 만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좋아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노스탤지어를 표현하기 위해 휘파람, 종소리 등의 사운드를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코요테 등 동물 소리를 사용해보고 싶었고 결국 그것이 영화의 메인 테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특별히 어딘가에서 영감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음악적인 아방가르드를 경험하면서 산출되는 또 하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이탈리아 음악에서 온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나폴리 민요, 이탈리아 오페라, 칸초네 등 이탈리아 음악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이탈리아는 내가 평생을 살아온 조국이다. 이탈리아의 음악은 평생 내가 즐겨 들어왔던 것으로 나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이 400여편에 이르는데, 가장 많은 영화음악을 맡은 경우에 한달, 또는 한해에 몇 작품을 했는가. 힘들지는 않았는가.
=글쎄, 기억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아직도 많은 작품을 쓴 것이 아니다.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단 15일 만에 작곡하지 않았던가. 한참 작업량이 많았을 때는 많은 작업을 거절하기도 했다. 너무 비슷한 타입의 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서나 영화를 위해서도 작업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피아노 같은 악기를 이용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작곡한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트럼펫을 배웠고 피아노 연주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작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게 문제이고 머릿속에서 어떻게 그 아이디어를 악보로 그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베르톨루치, 파졸리니, 토르나토레, 알모도바르를 비롯해, 브라이언 드 팔마, 올리버 스톤 등 이탈리아나 헐리우드의 많은 감독들과 작업했는데, 인상적인 감독이 있다면? 가령, 자유롭게 작업하도록 하는 유형과 많은 지시를 하는 유형이 있을 텐데.
=나는 영화음악을 만들 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감독과는 일하지 않는다. 스크립트를 읽어보고 내가 영화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쇼팽 같은 스타일을 원한다”라고 말한다면 그 영화에 대한 나만의 영감을 방해하는 것이니까. 반면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감독은 음악과 작곡가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다. 나와 음악적으로 다른 관점을 가졌으면서도 내 음악을 존중해주는 점이 좋다. <언터처블> 작업 시절, 주인공들을 위한 개선 행진곡을 쓰면서 사실 나는 그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감독에게 곡들을 모아 보내면서 이 곡만큼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감독은 바로 그 곡을 메인 테마로 사용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영화와 너무 잘 맞아 좋았다.

-베르톨루치, 파졸리니 등, 좌파 성향의 감독들과 작업하기도 했다. 그들의 영화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공감한 것인가.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라 할 수는 없다. 예전에 파졸리니가 감독한 <살로, 소돔의 120일>의 스코어를 작업할 때 나는 당시 작업에 만족하지 못했었다. 파졸리니 감독은 내가 충격적인 영화의 내용을 알게 되면 작업을 중단할까봐 나에게 영화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었다. 결국 나는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Deborah’s Theme>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Jill’s Theme>는 아주 비슷하다. 여성 코러스(또는 스캣)가 삽입된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곡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극중 주인공의 설정이나 파트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테마 또한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장르별로 다르게 음악적 접근을 하는가? 호러영화, 가령 <엑소시스트2>의 경우는 서정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주요하고 이국적 타악기와 보컬이 삽입되었다. 반면 <천국의 나날들>에서는 전원적인 음악이 많은 듯하다.
=영화의 스크립트에 따라 음악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장르별로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잔혹하거나 섬뜩한 장면에 오히려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이 대조적으로 흐르곤 한다.
=잔혹한 장면에 강한 음악이 들어가는 것보다 때로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음악이 관객으로 하여금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고 본다.

-영어 사용자가 아니면서도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영화의 음악을 맡았는데 애로 사항은 없었나.
=오래전 할리우드에서 미국에서 작업하도록 LA의 고급 빌라를 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으나 나는 이를 거절했다. 언어는 영화음악을 만드는 데 장벽이 될 수 없다. 영화의 내용, 그리고 영상은 언어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소재이고 그 배경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외국영화의 음악을 맡기 위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단지 나의 음악적 언어를 바꿨을 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는데, 이 상을 받은 영화음악가로는 알렉스 노스뿐이라고 하니 아주 영광스러운 수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간 이상하게도 유독 오스카상만은 당신을 피해갔다. 다섯 차례 노미네이트됐음에도 수상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공로상 수상으로 보상이 되었는가.
=<미션>이 오스카 후보로 올라갔을 때 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때 오스카상을 수상한 <Round Midnight>는 허비 행콕의 어레인지도 좋았지만 기존 곡들을 모아 만든 것이어서 오리지널 스코어인 <미션>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 오스카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어느 한 작품을 뽑아 상을 받는 것보다 평생의 작업과 공로를 인정해준 공로상이 매우 영광스럽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클래식=진지한 음악’이고 ‘영화음악=가벼운 음악’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당신도 처음에는 이런 통념의 피해자였는가? 절대음악으로서의 클래시컬 음악과 실용음악으로서의 영화음악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지.
=영화음악은 영화라는 소재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한 부분과도 같고 그 목적이 다르다는 점이 클래식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음악으로 사용되었어도 나의 작품 중 상당수가 ‘절대음악’이며 이것들이 실용적인 영화음악으로 쓰였기 때문에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클래식 작곡가 중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바흐, 프레스코발디, 다 팔레스트리나, 스트라빈스키, 슈토크하우젠, 그리고 산타 세칠리아 아카데미의 선생님 페트라시 등을 존경한다.

-부인 마리아 트라비아도 <미션>에서 라틴어 가사를 썼다.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도 현재 작곡가로 활동 중인데 <Nuovo Cinema Paradiso>의 <Love Theme>를 작곡했다. 당신의 재능, 특히 탁월한 선율을 뽑는 재능을 닮은 것 같다. 아들 자랑을 좀 해달라.:)
=안드레아는 내가 영화음악을 작업할 때 어시스턴트로도 자주 일했었고 단독으로도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나의 음악적 재능을 잘 물려받은 것 같고 아들을 볼 때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좋은 영화음악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내용과 장면장면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음악, 관객에게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켜주는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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