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티나 페이] 만약 예뻤다면 안 웃겼을 걸
2009-02-12
글 : 문석
<30록> 제작자·작가·여주인공 티나 페이는 미국 최고의 여성코미디언

대체 어딜 봐서 스타란 말인가. 최소한 외모로 봐선 티나 페이가 현재 미국 최고의 여성 코미디언으로 군림하는 이유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펑퍼짐한 몸매에 그닥 매력적이라 말할 수 없는 얼굴, 게다가 나나 무스쿠리를 연상케 하는 뿔테 안경까지. 그런 그녀가 미국의 TV와 영화, CF를 누비며 <피플>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타임>이 선정한 ‘우리의 세계를 만든 100인’ 등에 선정된 바 있고, 지난해에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올해의 엔터테이너’ 2위(1위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 꼽혔다는 사실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린시절에 뿌리 둔 그녀의 유머

“대학 교육을 받았고, 싱글이면서도 그걸 행복해하는 척하는 뉴욕의 제3세대 페미니스트. 일은 너무 많고 섹스는 거의 없고 표지에 ‘건강한 (남성의) 육체 이미지’가 실린 잡지를 사며, 2년마다 1주일씩 뜨개질을 하지.” <30록> 시즌1 첫회에서 <NBC> 부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잭 도나기(알렉 볼드윈)가 말하는 리즈 레몬(티나 페이)의 성향은 실제 티나 페이의 삶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페이가 기혼녀라는 점만 뺀다면. 그리고 여기서 누락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웃긴 여성 중 하나라는 점이다.

신랄하면서 냉소적이고 사회 풍자적이면서도 자기 비하로 유명한 티나 페이의 유머는 어린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70년 필라델피아 인근 소도시에서 태어난 페이는 자녀들에게 <영 프랑켄슈타인>이나 <몬티 파이선> <허니무너스>, 그리고 막스 브러더스의 작품처럼 개성 강한 코미디를 보도록 했던 부모 아래서 자랐다. 또한 그녀는 캐나다의 TV코미디 <세컨드 시티 TV>를 즐겨보면서 캐서린 오하라(<나홀로 집에>에서 케빈의 엄마를 연기한 그 배우)를 롤모델로 삼았다. 평범한 외모와 유별난 취향 또한 페이를 코미디의 길로 이끌었다. “나는 예쁘지 않고 조용하며 멍청했기 때문에 코미디는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도였다.”

버지니아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던 페이는 1992년 졸업과 동시에 시카고로 날아갔다. 어릴 적 즐겨봤던 <세컨드 시티 TV>의 원류이기도 한 세컨드 시티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즉흥극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세컨드 시티 극단에서 페이는 “육체와 감정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연기법을 통해 코미디 연기의 기초를 익혔다.

존 벨루시,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마이크 마이어스, 스티브 카렐, 스티븐 콜버트 같은 쟁쟁한 코미디언을 배출한 이 극단의 전통에 따라 페이 또한 뉴욕으로 무대를 옮겼다. 전통을 자랑하는 <NBC>의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에서 수석작가로 일하던 세컨드 시티 선배 애덤 매케이(<앵커맨> <탈라데가 나이츠: 릭키 바비의 발라드>의 감독)가 그녀를 이 프로그램의 작가로 부른 것이다. 1997년 <SNL>에 합류한 티나 페이는 1999년 <SNL> 사상 최초로 여성 수석작가가 됐으며, 2000년에는 간판 코너인 <위켄드 업데이트>의 진행자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코미디 연기자로 첫발을 뗀 페이는 서서히 각광받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로잘린드 와이즈먼의 소설 <여왕벌과 추종자들>에 10대 시절 자신의 체험을 녹여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시나리오를 썼고, 조연으로 출연까지 했다.

현실정치까지 꿰뚫는 매끈한 풍자 능력

티나 페이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시트콤 <30록>이다. <SNL> 시절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이 시리즈는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 등을 매년 휩쓸며 수준을 인정받아왔다. 물론, 티나 페이를 미국 대중문화의 태풍으로 자리잡게 한 사건은 사라 페일린 연기였다. 페이는 지난해 미국 대선 시즌에 방영된 <SNL>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으로 등장했다. 시청자는 페일린과 흡사한 그녀의 외모뿐 아니라 거듭 사고를 쳤던 페일린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페이에 반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녀는 미국 문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NBC> 회장 제프 주커), “티나는 지금의 시대정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유니버설픽처스의 제작담당 사장 도나 랭리) 등의 평가는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티나 페이가 발휘하는 거대한 영향력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한 파워는 “진정한 르네상스 여인”, “자신의 길을 스스로 쓰고 있는 최고의 여성 코미디언”이라는 평가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부터 인문학을 거쳐 현실 정치까지 매끈하게 꿰어내 풍자해낼 수 있는 그녀의 능력에서 비롯됐을 것. 페이가 적지 않은 남성(<타임>에 따르면 “괴짜 남성들의 여신”)과 대다수 여성(심지어 레즈비언 웹사이트 AfterEllen.com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뽑히기도 했다)에게 큰 지지를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티나 페이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덕분에 스타가 됐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안젤리나 졸리나 앤 해서웨이처럼 생겼다면 “저 랍스터 두 접시 다 먹어도 돼요, 잭?” 같은 자기 비하 유머가 먹히지도 않았을뿐더러 중학생 시절부터 남들을 웃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녀가 보통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페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많은 여성팬(과 일부 남성팬) 또한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에미상 TV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밝힌 수상소감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내 생김새와 능력에 어울리지 않게도 자신감을 갖게 해주셨거든요. 잘하셨어요. 그게 부모가 할 일이죠.”

페일린 연기, 최고의 히트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최고 화제 중 하나는 티나 페이의 사라 페일린 연기였다. 페이는 지난해 9월13일 <SNL> 34번째 시즌의 첫회에 페일린으로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6번에 걸쳐 <SNL>에 출연한 페이는 어려운 주제는 회피하며 엉뚱한 말을 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귀여운 척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기독교주의와 애국심만을 부르짖은 페일린의 행태를 과장해서 풍자했다.

페이가 연기한 페일린은 뉴욕 유엔본부에 처음 가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일하더군요. 내가 당선되면 그 모든 일자리를 미국인에게 돌려주겠어요”라고 답하거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지구 온난화는 (성경 속) 종말의 현상일지도 몰라요”라고 엉뚱한 말을 하곤 했다. 또 반미세력이 미국 안에 많다면서 반미세력은 바로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민주당이 우세인 지역과 경합지역)”라고 말했다. 또 부통령 토론회 말미에는 뜬금없이 플루트를 불며 “개인기 점수는 없나요?”라고 물으면서 애교를 떨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뒤 사라 페일린은 페이의 연기를 “즐겼다”는 입장이었지만, 공화당 내부에서 페이의 패러디가 매케인의 표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자 “그 방송을 오디오가 꺼진 채 영상만 봤을 뿐”이라며 뒤늦게 발을 뺐다. 결국 페일린은 10월18일 방송에 직접 등장해 ‘가짜 페일린’인 페이가 연기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다가 ‘진짜 페일린’으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페이의 페일린 연기가 이뤄지는 동안 <SNL>의 시청률은 50% 상승했고, 이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4천만번 이상 보여졌다. 일부 민주당 지지세력은 자유주의자인 페이가 페일린을 연기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기도 했고,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는 “페이가 지금보다 적나라하게 페일린을 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페이는 대선이 끝난 뒤 “페일린을 연기하는 것 자체는 매우 즐거웠지만, 마음고생은 심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제공 폭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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