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영상원 보고 눈물 나려 했다”
2009-07-10
글 : 문석
사진 : 최성열
라트비아 국립영화원 원장 일제 갈리트 홈베르크

라트비아를 아시는지. 발트해 연안에 자리한 라트비아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국가로 남한의 60% 정도 되는 면적에 250만 인구가 산다. 한국과는 최근 들어 경제교류가 추진 중이며, 문화교류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중이다. 최근 일제 갈리트 홈베르크 라트비아 국립영화원 원장이 한국을 찾은 것도 문화교류를 위해서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6월29일 한국에 도착한 홈베르크 원장은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국립박물관 등을 방문해 다양한 교류의 채널을 개통했다. 특히 홈베르크 원장은 오는 10월 라트비아에서 열릴 한국영화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 온 게 처음”이라는 홈베르크 원장이 ‘공식 일정’의 하나로 <씨네21>을 찾았다.

- 한국을 들른 이유는 무엇인가.
= 지난 1월 양국 정상이 문화교류를 적극적으로 펼치자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오는 10월에 열릴 한국영화제 준비도 중요한 일이다. 한국영화산업이 많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오지 않았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원, 국립중앙박물관, 영화사 백두대간을 들렀는데 모두 잘 갖춰져 놀랐다. 한국의 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 그렇다면 <씨네21>을 찾은 이유는 뭔가.
= 음…. 그건 내가 여기 와서 받은 스케줄표에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정해준 대로 움직이고 있다.

- 한국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는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 일단 영화진흥위원회에 추천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에 관한 한 그들이 나보다 훨씬 잘 알지 않겠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을테고, 저작권 문제도 처리해줄 테니 말이다.

- 개인적으로 라트비아 관객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한국영화는 없나.
= 홍상수 감독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만 그의 최근작을 보지는 못했다. 되도록이면 최근에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선보이고 싶다. 그래야 한국의 실생활이 잘 드러날 테니까. 어제 백두대간에서 이광모 감독을 만났는데, 한국영화 점유율이 40%를 넘는다고 들었다. 라트비아에서는 라트비아영화와 유럽연합(EU)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합쳐도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할리우드영화다.

- 라트비아와 한국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문화적 거리도 먼 것 같다. 라트비아영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 라트비아에서는 1932년 최초의 장편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소련에 흡수되면서 1991년까지 국가주도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로는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졌다. 장편영화로 말하면 한동안 1년에 2편 정도밖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1년에 5~6편씩 만들어진다. 특히 상업영화는 더 어렵다. 인구가 250만명밖에 안돼 국내 수입만으로는 제작비 회수가 어렵다. 대신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는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편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라일라 파칼니냐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받았던 것으로 안다. 헤르츠 프랑크 같은 감독도 유명하다.

- 영화사에서 일하다가 국립영화원 원장이 됐다. 어떤 과정이었나.
= 어릴 적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련 시절이라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체제를 건드릴 수 있어서 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그래서다. 통역사로 일하다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해외업무를 맡게 됐고 점점 영화 일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됐다. 1995년에는 리야 필름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영화원 원장은 공모에 참여해서 경쟁을 거쳐 맡게 됐다.

-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였나.
= 영상원이다. 영상자료원도 좋았지만 그곳은 지키는 게 주업무라면 영상원은 미래의 영화를 짊어질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기에 더 인상 깊었다. 시설과 규모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통역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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