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애니메이션은 리얼하면 안 되나요?
2009-10-14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로망은 없다>의 박재옥, 수경, 홍은지 감독

“아니 이걸 왜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하나?” 박재옥, 수경, 홍은지 세 감독이 애니메이션 <로망은 없다>를 기획했을 때 주변 반응은 이랬다. 지구상에서 어쩌면, 로맨스와 가장 멀리 담을 쌓았을지 모를 유일한 한 쌍. 자식 키우고 돈 버는 사이 예전의 로망은 간데없고 오직 진저리나는 생활만 남은 부부. <로망은 없다>가 기록하는 대상은 바로 그럴싸한 판타지도 짜릿한 모험도, <스파이더맨>에 버금갈 비현실적인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는 이 부부의 모습이다.

<로망은 없다>를 연출한 세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모두 영화 아카데미 동기, 그 간의 교육을 통해 ‘애니메이션’이라는 속박 아래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무수한 규정. 콘텐츠뿐만 아니라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일단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걸 실천해 보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만 있다면 어떤 형식이든 문제없다고 봤다.”(홍은지 감독)

시나리오를 착상한 홍은지 감독의 부모님 이야기를 뼈대로 주변 인물들의 취재를 통해 살을 붙였고 그 결과 흔히 볼 수 있지만, 독특한 결혼 27년 차 황순복, 고영순 커플이 탄생했다. 코믹한 느낌을 주고자 살아있는 듯 생생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신, 만화체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리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강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적인 배경 처리 대신, 수채화를 이용한 배경화면을 택했다. “이질적인 캐릭터와 배경이 튀지 않도록 말끔하게 봉합하는 기술적인 난제의 해결이 관건이었다.”(수경 감독) 묽게 채색된 수채화 속에 플래시백으로 이루어진 부부의 과거가 효과적으로 처리됐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했다”는 박재옥 감독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했지만, 세 감독 모두 올 겨울 개봉을 앞둔 시점에선 자신들의 고군분투가 대견하다. 시각화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에 도전하고 싶다는 박재옥 감독, 일본이 점유하고 있는 청소년용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고 싶다는 수경 감독, 언어 제약 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홍은지 감독. 실사와는 사뭇 다른 시스템적인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이들의 다음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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