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남궁민] 미소 뒤의 악바리 근성
2011-07-14
글 : 신두영
사진 : 백종헌
<내 마음이 들리니?> 남궁민

“정말 빠져드는 것 같아요.” 남궁민의 사진을 찍던 백종헌 사진기자가 말한다. 남궁민은 멋쩍게 웃는다. 이 웃음마저 살인적이다. 사진기자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건 ‘남궁앓이’ 중인 독자라면 다 알 거다. 남궁민은 남자라도 빠져들 정도의 미소를 짓는다. 이 미소는 배우에게는 생소한 MBC <뉴스데스크>의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악역이 뜬다’는 뉴스에 10초 출연한 악역배우 남궁민은 훈남배우 남궁민이 됐다.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마루 혹은 장준하(극중 이름을 바꾼다)로 남궁민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제2의 전성기? 아니다. 남궁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도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는 남궁민은 연예인이 아닌 평범하고 성실히 노력하는 배우로 살고 있다.

남궁민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쪽대본으로 유명한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 스케줄은 너무도 빡빡했다. 어렵게 남궁민이 시간을 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쪽대본 때문이다. 대본이 아직 나오지 않아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궁민은 꿀맛 같은 하루의 휴식도 인터뷰를 위해 써야 했다. 남궁민은 <씨네21>과의 인터뷰 이후 바로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라이징 스타 촬영을 위해 리무진을 타고 이대 앞으로 갔다.

남궁민은 10년차 배우다. 2002년 <대박가족>이라는 시트콤으로 실질적인 데뷔를 한 그는 KBS 일일드라마 <금쪽 같은 내 새끼>(2004)와 MBC 수목드라마 <어느 멋진 날>(2006) 등을 거쳤다. 이후 조인성과 함께 출연한 <비열한 거리>(2006), 박용우와 호흡을 맞춘 <뷰티풀 선데이>(2006)로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곧 연기의 꽃이 필 것 같았다. 봉오리가 무르익을 때쯤 병역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좋은 흐름으로 제가 원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포지션이 됐을 때 더이상 입대를 연기할 수 없었어요. <뷰티풀 선데이>의 제 분량을 미리 당겨서 촬영하고 바로 군대에 갔어요.” 남궁민에게 2년여의 공백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단지 연기를 못하고 대중에게 잊혀지는 게 아니었다. 실질적인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자랑스럽지 못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때 허리가 말썽을 부렸다. 허리 디스크로 일주일에 서너번은 여러 병원에 다녀야 했다. “너무 슬럼프였죠. 공익근무요원 시절 허리가 너무 안 좋아지면서 절망했어요.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너무 아프니까요. 사실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본 적도 없지만 그때는 ‘누군가가 나에게 건방져지지 말라고 좋아해주시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근근이 살았죠.” 아무리 슬럼프라도 남궁민은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게 지금의 봉마루 신드롬의 밑거름이다. “주사님들 잔심부름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발음 연습을 했어요. 그 안에서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악바리처럼 버틴 남궁민은 잠도 자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허리를 운동으로 치유했다. “윗몸일으키기 한번을 못했는데 지금은 허리힘만으로 150kg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자랑한다. 운동은 이제 중독이 됐다. 스케줄이 없을 때면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바로 헬스클럽을 간다고 하니 중독도 심한 중독이다. 심지어 그의 유일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헬스클럽 안에서 이뤄진다고 말할 정도다. “TV에서 연예인들이 말하는 고급 헬스클럽이 아니에요. 후미진 곳에 있고 여자 화장실이 없어서 여자 회원도 없는 그런 곳이에요. 정~ 말 땀냄새 많이 나고요. (웃음) 그런 곳에서 운동하고 같이 운동하는 분들과 커피 마시고 얘기하는 게 저의 유일한 낙이에요.”

벤치프레스 300개를 ‘바를 정’자를 써가면서 수행하듯 해내는 남궁민은 운동을 통해 허리를 완벽하게 고쳤지만 연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소집해제 이후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한 복귀작 <부자의 탄생>(2009)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몸이 안 풀려 있었어요. 그때 든 생각이 ‘작품을 멀리하면 안되겠다’였죠. 어느 정도 내공을 쌓기까지는 계속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내 마음이 들리니?> 하면서 일주일에 6∼7일 촬영을 하니까 몸은 힘들지만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어요. 저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앞에 보이는 카메라와 수많은 스탭들을 하나씩 지우려고 노력하거든요. 정말 몰입이 잘될 때는 다 지워지는데 요즘은 그게 잘되는 편이에요.” 남궁민은 “어깨가 풀렸다”는 표현을 썼다. “제가 울렁증이 심해요. 연기할 때도 긴장을 너무 해요. 그러면 어깨가 딱딱하게 붙는 느낌을 받거든요. 안 움직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괜찮대요. 그런데 저는 알죠.”

남궁민은 스스로 “로딩이 늦은 배우”라고 말한다. 로딩이 늦다는 의미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대본을 받고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지면 첫날에 본 것과 둘쨋날에 본 것이 다르잖아요. 대본을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걸 파악할 수 있는 분석력을 지닌 것 같아요. 일주일째 됐을 때 대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죠. 이렇게 촬영장에 가게 되면 그만큼의 자신감이 생기는데 만약 대본이 나오고 시간을 하루밖에 안 주거나 한 시간밖에 안 주어지면 뽑아낼 수 있는 감정이 적다는 걸 스스로 느껴요. 그러면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져요.” <부자의 탄생>에서 로딩이 지나치게 길었다면 <내 마음이 들리니?>는 로딩이 짧았던 걸까. 쪽대본으로 촬영했지만 남궁민은 감정 연기를 무리없이 해냈다. 극중 지능이 떨어지는 아버지 봉영규(정보석)와 가난한 가족을 둔 봉마루는 가족을 배신하고 장준하로 살아간다. 16년이 지나 다시 가족을 만난 봉마루는 눈물을 쏟아내지 못하고 삼킨다. 먼저 가족을 배신했기에 눈물을 쉽게 흘릴 수 없다. 감정을 눌러야 하는 연기는 결코 쉽지 않다. “눈물을 안 흘리는 건 살짝 힘들어요. 차라리 시원하게 울고 싶은데 감독님이 싫어하세요. ‘눈물 흘리면 안돼, 절대 흘리면 안돼’라는 말을 감독님께 많이 들어요. 마루라는 캐릭터는 남한테 슬픈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슬픔을 삼켜야 하는 아이예요. 사실 초반에는 완벽하게 마루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어린 마루는 다른 아역배우가 연기했고 그 감정을 어른이 된 제가 이어받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머리로는 알아도 감성적으로 잘 와닿지 않더라고요. 되게 많이 노력했어요.” 남궁민의 노력은 성공했다. 촉촉한 눈빛으로 16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를 멀리서 훔쳐볼 때의 장준하의 감정은 진짜였다.

<내 마음이 들리니?>로 남궁민은 자신의 이름을 대중의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시켰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남궁민은 다시 출발 지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포텐셜이 터졌다”라는 표현을 듣기도 하는데 데뷔 초반 남궁민은 연기에 서툴렀다. “너무 많이 혼났죠. 제가 추구하는 연기의 스타일은 눈빛으로 말할 수 있는 내면연기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연기 초보는 한다고 해도 얼굴로 안 보이나봐요. (웃음) 내면연기는 사실 안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혼자 내면연기하고 있는데 겉모습은 똑같은 거죠. (웃음)” 데뷔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남궁민은 자신의 연기를 현장에서 바로 모니터할 수 있는 캠코더를 따로 준비한다. “모니터를 해야 안심이 되는 편인데 드라마는 모니터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캠코더를 따로 갖고 다녀요. 다음 컷 넘어가기 전에 빨리 보려고요. 이만큼이라고 생각했는데 겉으로 표현이 안될 때가 많아요.” 이제는 캠코더를 놓고 다녀도 될 만한데 남궁민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일종의 열등감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이 열등감이야말로 그의 진짜 잠재력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래, 이렇게 나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차곡차곡 쌓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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