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홍수처럼 내뱉는 설교, 그러나 깊은 울림은 남기지 못한 <오늘>
2011-10-26
글 : 송경원

세상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들로 넘쳐난다. 용서라는 단어 역시 참 달콤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아름다운 말들이 누군가의 입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올 때마다 세상은 점점 추악해진다. 제대로 반성해본 적도 없는 자가 함부로 용서를 말하고, 안전한 곳에 숨어 공포를 경험해보지도 않은 자가 용기에 대해 논한다. 고민 없이 내뱉은 말들이 본질을 흐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마저 앗아가버리고 있다. <오늘>은 모두가 너무 쉽게 용서를 입에 올리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용서의 가치와 방법을 되묻는 영화다.

이번에도 이야기는 기묘한 동거로 시작된다. 다혜(송혜교)는 1년 전 자신의 생일날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었지만 가해자가 중학생임을 알고 용서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녀는 방송국 일도 그만둔 채 용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을 올린다. 한편 지민(남지현)은 판사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을 반복한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언니 다혜의 집으로 도망쳐온 그녀는 다혜와 그녀의 다큐 속 인물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족이 미운 지민에게 있어 다혜의 용서는 위선일 뿐이다. 계속되는 지민과의 논쟁 속에서 믿음이 점차 허물어짐을 느낀 다혜는 1년 전 자신이 용서해준 소년의 행방을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섣부른 용서가 불러온 또 다른 비극을 알게 되고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무려 9년 만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이 세 번째 작품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로맨틱코미디와 가족드라마처럼 조금은 따뜻하고 말랑한 이야기를 다뤘던 것과 달리 <오늘>은 ‘용서’라는 화두를 정면으로 던지며 깊고 묵직한 걸음을 떼어놓는다. 총기 난사 사건 관련 글을 보고 데뷔 전부터 구상했었다는 이번 작품은 성찰 없는 용서가 휩쓸고 간 상처의 황폐함을 응시한다. 용서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통해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되묻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긴 시간 공들여 묵혀온 고민과 해답을 스크린에 쏟아낸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그 목소리는 실로 단호하고 단단하다.

‘타인의 용서를 훔치지 말라.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이다. 반성 없는 용서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등 영화는 용서의 의미를 홍수처럼 내뱉으며 설교한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잔잔하게 진행되는 화면과 달리 그 속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논쟁하고, 해답을 풀어놓는다. ‘진정한 용서를 위해선 먼저 자신의 상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영화 속 결론이 무색하게 영화는 넘치고 조급하며 걱정이 많다. 감독의 분신임에 분명한 두 여인, 다혜와 지민은 내면의 상처를 차분히 보여주는 대신 온갖 기계적 수사를 늘어놓으며 소화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덕분에 매 장면 충만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차단되고 이야기는 용서의 의미를 알려는 주되 깊은 울림을 남기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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