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눈이 아닌 마음을 사로잡다
2011-12-22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3인3색③- 테크놀로지 혁신가로서 스필버그
<쥬라기 공원>

스필버그는 몇몇 영화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평범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솜씨도 대단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스필버그의 장기는 테크놀로지를 적절히 구사할 때 진정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때깔은 엄청난 규모의 블록버스터 모양새인데, 알고 보니 제작비가 적어서 놀랐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전설이 늘 떠돈다. 스필버그 영화의 특징은 철저한 상업성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취향의 반영이다. 개인적 취향의 의미는 오타쿠 기질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집중된다. 철저하게 대중성을 전제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테크놀로지를 결합한다. 그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주어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비주얼을 뽑아낸다. 이 말은 스필버그가 테크놀로지를 대단히 효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에 의지하거나 결코 남발하지 않는

스필버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죠스>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E.T.>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동시대 최고의 흥행작이면서,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영화들이다. 시각효과를 잘 다루면 영화는 보석처럼 빛나고, 그 반대의 경우엔 엉망이 된다. 많은 감독들이 시각효과가 선사하는 마술적 비주얼에 경도되어, 절제의 타이밍을 놓치고 폭주를 하다 가루가 되도록 욕을 듣곤 했다(이 대목에서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가 안타깝게 떠오른다). 반면 스필버그는 시각효과의 도움을 빌려 장르의 모범으로 남을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기술에 의지하거나 결코 남발하지 않았다. 늘 적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적재적소에 알맞게 녹여냈다.

몇년 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미지와의 조우> <블레이드 러너>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더글러스 트럼블과의 인터뷰 때 인상적인 답변을 들었다.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의 기술적 이해도에 관해 묻자 “모든 감독이 시각효과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각효과가 전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답했다. 이는 결국 시각효과는 영화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이것을 영화에 최적화하는 작업은 감독의 능력이란 뜻이다.

<죠스>를 보자. 개봉 당시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기록을 새롭게 쓰며 최고 흥행작이 된 <죠스>에 쓰인 특수효과는 특별한 것이 없다. 브루스란 이름의 로봇 상어가 등장하는데, 요즘 기준의 정교한 로봇의 모습이나 성능과는 거리가 멀다. 몸통을 움직이고 아가리를 쫙쫙 벌려주는 정도의 로봇이다. 당시로선 기술이 떨어지니 진짜 상어를 찍은 것과 절묘하게 편집을 해서 그럴싸하게 포장을 마쳤다. 그런데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영화를 본 관객은 로봇 상어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상어의 흉포함에 치를 떨고 공포를 느낄 뿐이다. 상어의 시점으로 바다를 누비고,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만 울리면 심장이 쪼그라든다. <죠스>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바다에 들어가면 어디선가 상어가 나타나서, 다리를 뜯어먹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거머리처럼 따라붙는다. <죠스>에서 상어의 활약은 많지 않다. 등장 횟수도 적고,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도 극소수다. 그러나 상어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관객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위협을 가한다. 스필버그는 <죠스>를 통해, 기술이 부족하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죠스>의 대성공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아류작들이 넘쳐났고, 시각효과 분야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죠스>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술이 전부가 아님을 <죠스>로 알 수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기술을 적재적소에 재활용

<미지와의 조우>에서 스필버그는 시각효과의 비중을 대폭 늘려간다. 두 생명체의 감동적 조우를 위해서 우주선 모형과 모션 컨트롤 카메라가 동원되었다. 여기에 빛을 이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미지와의 조우>는 아날로그 기술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이며 아름다운 비주얼에 도달했다. 관객은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죠스>와 마찬가지로 시각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스필버그의 몫이었고, 그는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했다. <미지와의 조우>는 순수하게 시각효과만의 성찬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드문 영화가 되었다. 스필버그 영화의 시각효과들은 눈이 아닌 마음을 사로잡는다. <E.T.>의 명장면들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촌스러운 특수효과들이 넘친다. 하지만 그것들은 감정을 격하게 만든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우정을 나누는 영화에서, 자전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얘깃거리도 안된다. 근데 어떤 일이 벌어졌나? 관객은 탄성을 지르고 감동의 늪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드라마와 캐릭터의 감정적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필버그는 그 과정을 소박한 시각효과로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쥬라기 공원>도 스필버그가 테크놀로지라는 연장을 얼마나 탁월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2>로 CG 기술의 혁명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쥬라기 공원>도 없었다. 카메론은 CG의 새로운 모델과 시장을 제시했고, 스필버그는 저렴한 비용으로 기술을 재활용했다. 샘 닐이 연기했던 그랜트 박사가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 관객은 완벽하게 극중 인물과 한마음이 된다. 개봉 당시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스필버그는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꿈을 실현시켰다. 진짜 공룡을 보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 할 말을 잃는다. 궁극의 시각효과란 이런 것이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테크놀로지란 영화를 포장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공을 들이며 가꾸어, 눈이 아닌 마음을 사로잡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했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총알과 폭탄은 시각효과 그 이상의 결과물이다. <우주전쟁>의 트라이포드는 절대 파워의 공포를 선사했다. 최근작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스필버그 최초의 디지털영화다. 해전의 박력과 틴틴의 추격신은 실사영화를 가볍게 능가한다. 이를 두고 특수효과가 끝내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 전체를 두고 시쳇말로 ‘죽인다’고 얘기한다. 기술력의 승리가 아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와 마이클 베이는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하나 지속성이 없다. 스필버그는 테크놀로지의 함정을 지혜롭게 빠져나간다. 차기작 <워 호스>에서 스필버그는 다시 필름영화로 돌아간다.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대가의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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