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탐독] 멸망이 유쾌할 수 있다면… 이렇게!
2012-04-26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인류멸망보고서> 중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 <해피 버스데이>

지난해 10월경 종말을 소재로 유명 작가들이 참여한 단편소설 모음집인 <종말 문학 걸작선>이 출간되었다. <인류멸망보고서>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책이었다. 옴니버스의 재미는 다양성에 있다. <인류멸망보고서>의 매력도 세 가지 장르가 주는 맛이다. 세편의 이야기에서 임필성 감독은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 두편을 연출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영화의 제작 시기가 큰 차이가 있어, 같은 감독임에도 스타일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본격 좀비물을 표방한 <멋진 신세계>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쓰레기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하필 음식 쓰레기 중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듬뿍 함유한 사과가 섞인 것이 초대형 사건을 일으킨다. 자연의 섭리는 돌고 돌며, 뿌린 대로 거둔다. 쓰레기통에 들어간 사과는 다른 음식 쓰레기와 곱게 갈려서 소에게 먹여진다. 소는 도축되고 그것을 사람이 먹으면서 세상은 좀비세상으로 변한다. 호감 가는 스토리텔링이다. 여기에 임필성 감독은 시대적 정서를 양념으로 더한다. 뉴라이트, 광우병과 같은 한국사회가 겪었던 정치와 사회적 이슈를 강하게 드러냈다. <멋진 신세계>는 줄곧 장르영화에 강한 애착을 드러낸 임필성 감독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특이한 것은 최근 호러 장르에서 주류로 올라선 좀비를 마니아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정치적 논쟁거리는 블랙 유머의 소재로 훌륭하지만 노골적으로 활용되면서 도리어 효과가 떨어졌다. 90분 토론 방송이 대표적이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전개, 황당할 정도로 관객을 웃기는 이 명장면은 독립적으로 봤을 때 분명 몇년 동안 나온 한국영화에서 가장 기이하며 폭발적인 유머를 과시한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가 본격 좀비영화임을 떠올린다면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1분이라도 더 보고 싶은 것이 좀비의 활약 아니던가. 그래서 <멋진 신세계>는 재미있지만 강렬하진 않다. 뭔가 보여줘야 된다는 강박에 의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상특급> <납골당의 미스터리> <어메이징 스토리>의 어정쩡한 에피소드보다 뛰어나다.

<해피 버스데이>는 세편 가운데 재미와 완성도가 단연 뛰어나다. 어느 날 지구를 향해 거대한 괴행성이 다가온다. 충돌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괴행성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한 소녀가 우주 쇼핑몰에서 주문한 8번 당구공이다. 인터넷 쇼핑이 인류 멸망을 가져온다는 설정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임필성 감독은 혼란을 겪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흥행 실패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 그의 영화는 어둡고 파괴적이었다. <멋진 신세계>는 유머는 강해도 작품에 녹아 있는 정서는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해피 버스데이>에서 임필성 감독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과 달리 긍정적이며 희망을 얘기한다. 인류 멸망을 다루지만 심각하지 않다. 세상이 파괴되고 10년의 세월을 지하실에서 보내는 가족은 따뜻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다가 따뜻한 난로를 가까이 했을 때 느껴지는 푸근한 온기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인류 멸망이 과연 유쾌할 수 있을까? <해피 버스데이>는 물론이지! 라고 답한다. 임필성 감독에게 <해피 버스데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강박을 벗어난 그의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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