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바타> 이후 최고의 성찬
2012-06-19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블록버스터의 기술적 성취로서 본 <프로메테우스>

오늘날 블록버스터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불만이라면 특수효과를 제대로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면 전환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니 느긋하게 세트와 미술, CG가 결합된 비주얼을 감상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세트와 미술의 미학에 감동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를 보며 감격한 것은 과거 SF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느린 호흡의 재현과 거대한 세트가 주는 박력이었다. 그는 무대가 되는 우주 공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관객은 오랜만에 캐릭터보다 배경이 되는 공간, 그 자체를 보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리들리 스콧은 시각효과를 다루는 재능이 여전함을 <프로메테우스>로 입증했다. 아이맥스 3D로 체험하는 시각효과의 성찬은 <아바타>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비주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두 가지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제인 인류의 기원이다. 스토리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뇌세포의 기능은 잠시 꺼두자. <프로메테우스>는 그 어떤 블록버스터영화보다 사이즈에 민감하다. 인간 탄생의 기원을 보여주는 도입부의 비주얼 구성은 예사롭지 않다. 원시적 환경인 지구,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거대한 우주선과 굉음을 내는 폭포, 창조주의 살신성인의 과정이 압축된 장면은 <프로메테우스>가 보여준 경이적인 비주얼의 서막이다. 마치 그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3D 효과 또한 발군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큰 사이즈에 경외심을 가진다. 크다는 것은 강하고 우월함을 의미한다. 인간 탄생 기원의 답을 찾기 위한 탐사대원들의 행적은 이런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최적화되었다. 고대의 언어는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신비주의의 이미지를 가지며, 창조주가 만들어둔 조형물들은 터무니없이 거대하다. 리들리 스콧은 배경이 된 우주선의 공간을 최대 규모로 키우면서 기이한 형태의 내벽이 발산하는 질감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공간에 들어선 인간은 나약하고 초라하며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프로메테우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사이즈로 인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극적인 대비 효과는 근래 보기 드문 장관이다. 생물기관과 기계가 융합한 것 같은 초현실적 느낌을 자아내는 우주선은 H. R. 기거가 <에이리언>에서 창조했던 바로 그 무대(행성은 다른 곳이지만)의 재활용이다. 기거는 러브크래프트의 열광적인 팬으로 <에이리언>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크툴루 신화를 빌려왔고, 리들리 스콧의 비주얼 감각과 어우러지며 전대미문의 영상 체험을 이루어냈다.

여기서 비주얼을 즐기는 두 번째 요소는 <에이리언> 1편에 대한 복습이다. 감독 스스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이 큰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을 만들면서 아쉬웠던 장면들을 손질하듯이 적지 않은 장면들을 가져다 재구성을 했다. 탐사대원들이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적응시간을 거쳐 음식을 섭취하는 장면은 <에이리언>의 도입부와 똑같다. 달라진 것은 깨진 생체 리듬이 적응하기까지의 디테일한 묘사가 추가된 것이다. <에이리언>에서 안개에 싸여 있던 독특한 외형의 우주선은 완전하게 실체를 드러냈고, 초현실적이면서 관능적 이미지로 가득한 공간이 창조된 것은 리들리 스콧다운 솜씨다. 또 하나는 탐사대원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이들을 덮치는 돌풍의 존재다. <에이리언>에서는 반대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갈 때 돌풍을 경험한다. 강한 바람,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돌풍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보여주는 비주얼은 단연 올해 최고다. 리들리 스콧이라는 장인이 비주얼에 대한 탐욕으로 일궈낸 기억할 만한 테크놀로지의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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