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아일랜드]
[김종철의 컬처 아일랜드] 영화제도 등급이 있나요?
2012-09-07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판타지아국제영화제서 수상한 김지운, 임필성, 연상호 감독에게 큰 박수를
<인류멸망보고서> 중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

무슨 일이건 남에게 인정을 받고, 상을 타면 좋은 일이다. 당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순간이고, 그것이 대중문화 분야라면 문화계에 발을 담고 있는 누구라도 축하해 줄 일이다. 얼마 전 김지운, 임필성 감독의 옴니버스영화 <인류멸망보고서>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6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간편하게 숫자로 표기하면 1등, 메달로 치환하면 영광의 금메달이다.

영화제 수상이 무조건적으로, 그해 넘버1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의 많은 장르영화들이 경합을 벌이고 그 가운데 대상을 받은 건 대단한 일이다. 따라서 영화제의 지명도를 떠나서, 반드시 언급되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인류멸망보고서>의 이번 수상은 장르 팬들도 모르는 소식일 만큼, 조용하고 은밀하게 소수 매체에서 관련 소식을 짤막하게 전하곤 끝났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 같은 이름있는 영화제였다면 이를 전하는 기사 보도의 분위기가 분명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만큼 국내에서 장르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방증이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적으로 장르 아일랜드 영화 시장과 팬덤의 규모는 커져가는데, 국내에선 여전히 단발성 트렌드 상품으로만 기획되고 소비되는 현상이다. 한번 흥행되면 유사 짝퉁이 쏟아지고, 좀 안된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꼬리를 감춘다. 여하튼 영화제쪽에서는 <인류멸망보고서>에 대해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멸망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지적이고 독창적이며 완성도 높게 연출했다”고 대상에 해당하는 ‘슈발 누아르상’(Cheval Noir Award)을 안겨주었다.

<인류멸망보고서> 중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

또한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도 같은 영화제에서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의 우수 작품에 주어지는 ‘곤 사토시 상’과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돼지의 왕>이 칸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땐 이와 관련한 기사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칸영화제라는 브랜드의 힘이다. 영화와 스포츠의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런던올림픽은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메달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감동과 흥분을 준다. 하지만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의 이름은 언급도, 기억도 되지 않는다. 영화제처럼 메달도 등급이 매겨진다. 금메달이라고 다 같은 금메달이 될 수 없고, 은메달과 동메달은 종목에 따라서 잠시 주목을 받거나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한때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카피가 유행했다. 이 말은 철인경기를 다룬 호주영화 <위너스>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이기도 했다. <위너스>는 철인경기 우승을 노리는 형제와 강박처럼 이를 밀어붙이며 능력 좋은 형만 편애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결국 가족을 위해 일부러 1등을 내준 동생의 희생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영화이기 때문에, 동생의 선택은 돋보였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순위에서 밀려나는 순간 끝나는 거다. 이젠 1등을 해도 다른 옵션을 충족시켜야 가치를 부여받는다. 개개인이 지닌 재능에 대해선 관심없고, “어느 학교 나왔어?”로 능력치를 검증하는 것처럼, 영화제 수상도 출신이 중요한 것 같다. 뒤늦게나마 김지운, 임필성, 연상호 감독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