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들의 이상한 관계 <파괴자들>
2012-10-31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파괴자들>에 참여한 인물들은 쟁쟁하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개의 힘>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돈 윈슬로의 소설이 원작이며(작가가 직접 각색에 참여했다), 연출자는 다름 아닌 올리버 스톤이다. 잘나가는 작가와 과거의 명성은 잃었으나 여전히 신뢰를 주는 감독의 만남 그리고 여기에 베니치오 델 토로, 존 트래볼타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참여해 기대치를 한껏 높인다.

영화는 O(블레이크 라이블리)라 불리는 여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O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섬세한 남자 벤(애론 존슨), 군인 출신의 터프가이 촌(테일러 키치)과 캘리포니아의 풍경 좋은 집에서 동거를 한다. 이들의 관계는 이상하다. 남자들은 여자를 공유하고, 여자는 둘을 오가며 애인 관계를 유지한다. 돌아가며 섹스를 하거나, 내키면 폭풍 스리섬까지 알콩달콩 쾌락의 성을 쌓아간다. 그리고 벤과 촌은 질 좋은 마리화나를 재배해 사업에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다. 멕시코 마약조직 카르텔이 눈독을 들이면서 O를 납치한다. 이에 벤과 촌은 O를 구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과거 올리버 스톤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몰고 오는 문제작을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뇌세포가 굳었는지 최근의 작품들은 과거의 명성을 갉아먹기만 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파괴자들>도 올리버 스톤의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다. 그가 <살바도르> <플래툰> <JFK>를 만든 동일 감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파괴자들>은 도통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집중해야 할 이야기의 중심이 없다. 여자를 구하고자 목숨 걸고 덤비는 남자들의 러브스토리인가? 아니면 마약조직 카르텔과의 한판 승부를 그린 갱영화? 알고 보니 잔인무도한 마약상도 자식 앞에선 어쩔 수 없는 평범한 한명의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고 영화의 원제목의 의미처럼 인간의 야만성을 깊이있게 묘사하지도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파괴자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다. 이야기가 방향을 잃고 헤매니, 과거였다면 칭찬을 받았을 영상과 편집의 기교마저 요란한 장식품에 불과하며, 음악은 귀가 부끄러울 정도다. 가슴 아픈 것은 낭비되는 배우들이다. 베니치오 델 토로, 존 트래볼타와 같은 배우들이 고작 약 팔아 쿨하게 살고 싶은 잡놈과 쇼핑과 섹스 외엔 하는 일이 없는 잡년이 펼치는 사랑놀이의 들러리가 될 줄이야. 베니치오 델 토로에게 주어진 마지막 대사는 화가 날 정도다. <파괴자들>은 한때 거장이라 불리던 올리버 스톤의 몰락을 보는 듯해 안쓰럽다. 올리버 스톤이여, 부디 하루빨리 자기 자리로 복귀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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