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청소년 여러분, 부모님과 함께 보세요
2012-12-04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고삼이 집나갔다> 홍승표

190cm의 커다란 키. 홍승표 작가가 큰 키만 한 박스를 들고 뛰어온다. “집 나온 지 얼마 안돼서. (웃음)”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이고삼’(<고삼이 집나갔다>) 체험이라도 하는 걸까.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피스텔, 현재 그가 가족과 떨어져 주말을 빼곤 꼬박 거주하는 공간이다. “처리할 일이 많아져서 작업실을 따로 얻어서 나왔다. 지금도 집기를 사가지고 오는 참이다.” 네이버 일요웹툰 <고삼이 집나갔다>와 모바일웹 <닭통령계양반>에 노래 가사 작업도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했다. 다른 작가들이 도박빚이라도 있냐고 놀리더라. 작업실 와서 바짝 일하니 하루라도 여유가 생겼다.”

홍승표 작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그의 영역이 확고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르물과 일상툰이 대부분인 웹툰계에서 그는 현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드라마화한다. ‘미티’라는 필명을 널리 알린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에서부터 그는 주인공 남기한을 공무원 시험에 계속 낙방하는 27살의 취업재수생으로 설정했다. 보다 본격적인 성격은 물론 연재 중인 <고삼이 집나갔다>에서 드러난다. 수능 준비를 하던 평범한 고3 수험생이 충동적으로 집을 나간 뒤 겪는 80일간의 방황. 이고삼의 눈을 통해 홍승표 작가는 현재의 청소년이 처한 위기, 제도적 뒷받침의 미비함까지 디테일하게 짚어나간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지 못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가 현실에 불만이 많은 인물을 과거로 돌려보냈다면, <고삼이 집나갔다>는 학창 시절 불만이 많은 사람을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게 해주는거다. 나 역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할 거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다행히 <고삼이 집나갔다>를 보고 부모님이랑 같이 보고 있다는 격려메일이 많이 온다.”

작품에서 밝혔듯이 <고삼이 집나갔다>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절반이 실제이고 절반이 극화라면, 그 실제의 절반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다. “고3 때 60일 동안 가출한 적이 있다. 작품처럼 친구 넷이 뭉쳐서 집을 나가서 고생을 많이 했다.” 부연하자면, 그는 그때 집 나갔다가 ‘수능 말아먹고’, 음악을 하던 중 <마린블루스>와 <츄리닝> 같은 웹툰을 보고 그림을 시작했다. 23살에 대학도 갔지만, 역시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로 접어든 경우다. ‘가출팸’(가출 청소년들이 고시원, 모텔 등에서 가족처럼 살아가는 형태)이 이미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만큼 그는 아예 <고삼이 집나갔다>를 ‘19금’ 만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 여학생의 1/4이 성매매 경험이 있고, 남학생은 도둑질, 강도, 폭행 같은 사건을 비일비재하게 겪는다는 기사를 봤다. 쉬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수위조절이 고민됐다.”

물론 밑바탕이 현실이라고 해서 홍승표 작가의 작품이 사뭇 심각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의 초반부는 과거로 간 남기한의 좌충우돌이 시트콤처럼 펼쳐지며 웹툰계의 개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고삼이 집나갔다> 역시 심각한 상황을 일깨우는 방식은 코믹한 상황연출이다. “내 패턴이 원래 ‘고딴식’이다. (웃음) 초반엔 웃긴데 후반으로 가면 진지병 걸리셨냐고 하더라. 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일단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재 초기엔 댓글에 영향을 받아서 작품의 방향을 잃기도 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이젠 그런 간섭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오히려 아직까지 그림에는 자신이 없다. 색감이 너무 칙칙하기도 하고 인체비율도 안 맞고… 그래도 희망을 얻은 건 누가 ‘이거 미티님 그림이다’라고 하는 거다. 못 그려도 내 스타일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좀 편해지더라.” 웹툰을 직업으로 삼고 한달에 13만원을 벌던 시절을 지나, 이젠 유명한 스타작가지만 그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 “걸으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편이라, 낮시간에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어느 날 아내한테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애고, 젊은 양반이 일도 없이…’라고 걱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웃음) <고삼이 집나갔다>를 드라마로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왜 연락을 안 주시는지…. (웃음)”

아기 사진 보면 힘이 난다

-최근 가장 주목하는 웹툰은.
=이종규 작가의 <전설의 주먹>. 발상이 특이한 작품을 좋아한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난 아직 멀었구나 싶더라. 웹툰은 아니지만 허영만 선생님을 존경한다. 아직도 현역에서 만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다. 후배들 작업실에서 새로운 걸 보면 나도 이거 사야지 하며 호기심을 보이신다. 늘 스펀지같이 새로운 걸 받아들이시고, 그게 작품에 반영되는 원동력인 것 같다.

-작업 이외의 시간에는 뭘 하나.
=지금은 아기가 어려서(2살) 아기 보는 데 다 할애한다. 최근엔 작업실에 와서 떨어져 있으니 짬짬이 전화하고, 시간 남으면 살신성인한다. 원래 난 낙서하고 노래하고 글쓰는 게 취미였다. 정말 이걸 직업으로 갖기는 싫었는데…. (웃음)

-마감의 조력자(사람, 물건 다 포함).
=일단 핫식스(에너지 드링크). (웃음) 진짜 힘들 때는 아기 얼굴 보면 힘이 난다. 졸려 죽을 것 같은데도 자면 안될 때 아내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아기 얼굴을 보면서, 나란 인간이 이런 데서 힘을 얻기도 하는구나. 정말 그전에는 아기 싫어했는데, 내 아이가 있으니 이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