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빵 터지면 사라지는 그건, 정신줄
2012-12-04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놓지마! 정신줄!> 신태훈 글작가

살다보면 가끔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을 때, 지름신이 강림할 때, 학교나 직장에서 욱할 때 등등. 그런데 그런 순간들에 묘한 쾌감이 있다. 평소에는 꾹 참고 있다가 한번씩 폭주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또 허전해지기도 하는 바로 그 느낌.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마다 찾아오는 ‘스튜디오 놓정’의 웹툰 <놓지마! 정신줄!>은 그 ‘삘’에 집중해 지난 3년간 달려왔다.

300회가 넘도록 그들이 네이버 웹툰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 있을 것이다. 입시 스트레스와 왕성한 식욕에 시달리는 여고생 막내 정주리(정줄이), 비상한 두뇌를 가졌지만 아직 군대를 안 간 대학생 맏아들 정신, 명예퇴직을 앞둔 대기업의 만년 과장 아빠 정 과장, 세 사람 챙기느라 항상 ‘멘붕’ 직전인 엄마. “세대별로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 가족의 막장 일상은 <심슨 가족>이나 <하이킥> 시리즈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읽던 사람도 정신줄 놓기 딱 좋다.

그렇다고 <놓지마! 정신줄!>이 정신줄 놓고 만든 웹툰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정신줄을 아주 단단히 붙들어매고 만든 웹툰이다. ‘스튜디오 놓정’의 신태훈 글작가와 나승훈 그림작가는 게임산업이 불황으로 잠시 휘청거렸던 2008년, <블리자드> 관련 제품 디자이너와 팬아트 작가 ‘썅또끼’로 만났다. 그들은 만화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모델을 고민했고, 그 결과 만 들어진 것이 지금의 정신줄 캐릭터들이다. “1년의 시행착오 끝에 손모양의 머리카락으로 정신줄을 쥐고 있는 그림이 나왔고, 캐릭터 상품화를 고려해 상표등록과 디자인 의장등록까지 마쳤다. 당시 대세였던 <1박2일>에서도 매주 정신줄이란 단어가 나오고 있어서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때가 이미 네이버 연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타깃이 확실한 기획형 웹툰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그들을 ‘돈독 올랐다’며 비난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신태훈 작가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거다. (웃음)”

<놓지마! 정신줄!>의 상품화에는 남모를 희생도 따랐다. 가장 아쉬웠던 건 “성인 독자층을 포기해야 했던” 일이다. 현재 <놓지마! 정신줄!>의 최고 전략은 다분히 초딩스러운 발상과 전개다. 특히 생리작용, 다이어트, 친구관계, 학교시험, 가족 나들이 등과 같은 소재로는 끝장을 본다. 초딩 네티즌 용어의 용법을 적용한 작명센스도 작렬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썬더그룹의 라이벌 DBJ그룹은 ‘듣보잡’에서, 미국에서 날아온 존과 밥은 은어 ‘조낸 밥’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는 웹툰의 가장 큰 독자층이 10대라는 점과 캐릭터 상품의 주요 소구대상이 초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점을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반면 어떤 소재들은 자체 검열이 필요했다. “우리라고 왜 정치적 이슈를 다루고 싶은 충동을 안 느끼겠나. 어쩌면 시사 논평으로 써먹기에 이만한 웹툰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 어린 친구들의 세계관에 너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원초적이고 슬랩스틱적인 요소들로 이야기를 끌어왔다. 부모님 세대의 비애도 가급적 자녀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물론 300화가 넘도록 한결같기도 어려운 일이다. 정신줄 놓는 장면은 전보다 은근해졌고, 현실 정치에 대한 “과도한 필터링 탓”인지 역으로 SF적인 설정은 강해졌다. 특히 정신이 거의 초능력자 수준이 됐다. “정신의 ‘신’이 거의 ‘God’이 되어버려 큰일이다. 독자들도 정신이를 많이 찾는데, 잊혀져갈 때쯤 다시 보통 대학생 캐릭터로 내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은근슬쩍 바꿔도 되냐고? <놓지마! 정신줄!>에서는 된다. 일관성의 부담감을 일찌감치 내버린 이 웹툰은 3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나이를 슬쩍 바꿔치기한 적도 있고, 오타는 부러 그냥 내버려두고, 단순한 필요에 따라 수십명의 캐릭터를 추가로 파생시키기도 했다. 보통 웹툰에서라면 옥에 티가 될 그 산만한 여정이 <놓지마! 정신줄!>에는 어울린다. “읽으면서 독자들이 정신줄을 놓으라는 의미도 있고, 만들면서 우리가 정신줄을 놓을 때도 있다. (웃음)” 여기에 내년 공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차기작들도 여럿 대기 중이다. 선물가게 이야기도 있고, 동물만화도 있고, 제품 디자이너 이야기도 있고, 자전거 수리상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아마 놓정 스튜디오의 정신줄 놓은 폭주는 내년에도 계속….

포털 국어사전 개발자님 감사감사!

-최근 가장 주목하는 웹툰은.
=한 가지만 얘기하기는 좀 그런데. 나 말고도 많은 웹툰 작가들이 그랬겠지만, <역전! 야매요리>보는 순간 아, 토요일은 뺏겼다, 생각했다. 동종 장르이다 보니 가스파드 작가 웹툰도 유심히 보고 있고. 차기작으로 선물가게를 소재로 한 걸 준비하고 있어서 사랑 이야기와 관련된 것들도 유심히 챙겨보는 중이다.

-작업 이외의 시간에는 뭘 하나.
=그런 시간은 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애들이랑 놀아줄 때 정도? 이런 말하면 와이프가 어디서 훈남인 척이냐고 뭐라 할 텐데. (웃음) 근데 사실 뭘 해도 머릿속에서 웹툰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밥 먹다 젓가락만 떨어뜨려도, 마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기만 해도, 이거 웹툰으로 만들어볼까 싶어지니까. 어쩌면 <놓지마 정신줄> 생각을 놓을 수 있는 건 아예 다른 일을 할 때다. 쇼핑몰을 업데이트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부할 때.

-마감의 조력자(사람, 물건 다 포함).
=포털 국어사전과 맞춤법 사전. 마감 때 웹툰 맨 마지막에 들어가는 헤드라인을 내가 쓰는데, 그거야말로 내 고유권한이다. 다른 부분은 오타가 나도 그냥 두고 그걸 다시 작가툰에서 써먹기도 하지만, 거기서마저 오타가 나면 부끄럽잖나. 그래서 마감 때 포털 사전을 꼭 옆에 열어놓는다. 개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