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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특급드라마’를 떠나보내며…
2014-05-20
글 : 최지은 (웹매거진 아이즈 기자)
드라마 <밀회>, 그 우아하고도 견고한 세계

JTBC <밀회>가 방송되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둘은 전혀 다른 사건이었지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은 올봄을 보내고 결국 내게 남은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언제 생이 끝날지 모르고 어떻게 삶의 이유를 잃을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먹먹한 마음으로 <밀회>를 따라갔다. 스무살, 재능과 젊음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남자아이와 마흔, 눈부신 성공을 이뤘지만 역설적으로 무엇 하나 자기를 위한 것을 갖지 못했던 여자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밀회>는 이렇게 요약하기엔 왠지 아쉬워 자꾸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다. 정치 드라마이기도 음악 드라마이기도 청춘 드라마이기도, 동시에 통속 드라마이기도 한 이 작품은 뛰어난 지휘자와 독주자, 오케스트라가 만나 만들어낸 우아하고도 견고한 세계였다. 그 안에 들끓던 인간들의 욕망과 위선을 굳이 돌이켜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스무살 어린 남자애와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친구 혜원(김희애)에게 “그래서, 지금 제일 힘든 게 뭐야?”라고 묻던 지수(윤복인)의 안타까운 얼굴, 학교를 떠나기 전 선재(유아인)와 실내악 연주회를 준비하며 잔뜩 들떠 있던 음대 동기들, 간통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나와 모두의 앞에서 엿 먹이듯 포옹하던 선재와 혜원의 모습처럼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절절한 감정들이다.

그래서 <밀회>는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 답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오혜원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그동안 손에 넣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사랑하며, 행복하게, 존엄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그가 택한 길이었다. MBC <하얀거탑>을 만든 뒤 “보는 사람은 대충일 수 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작품’이라는 생각만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했던 안판석 감독과 15년 전인 1999년 이미 “대중작가의 자기검열은 결국 대중에게 손해”라고 잘라 말했던 정성주 작가가 치열하게 추구해온 길을 통해 내놓은 결론이었다.

드라마가 막을 내린 다음날,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그보다 더 완벽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옮긴다. “예술의 통속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드라마라는 현실적인 시스템 안에서 풀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놓고 어루만지거나 불쑥 던져놓기 녹록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그 경지를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고요.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드라마라는 기법으로 이 모든 과정을 흥미롭고 진득하게 풀어내며 <밀회>의 세계를 창조한 강직한 어른. 안판석 감독님, 정성주 작가님. 넉넉한 여유와 진정성으로 진정성을 보여주신 두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 α

가장 보통의 관객

혜원이 감옥에 간 뒤 혼자 남은 선재가 집에 돌아와 모차르트 론도 A 단조를 연주하고 장호와 다미가 나란히 앉아 들을 때, 선재에게 줄 반찬통을 들고 빼꼼 문을 열었던 아랫집 아주머니는 피아노 선율에 끌리듯 문간에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인다. 오직 음악만이 ‘갑’인 순간, 그 예술의 순간들을 따라가며 종종 황홀해지던 내 얼굴이 바로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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