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ew]
[유선주의 TVIEW] 구여친의 역습
2015-06-02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드라마 <구여친클럽>이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은

“남자 캐릭터가 영 아니야. 착한 남자, 이걸 어디다 쓰니?” 대표가 실무자와 상의도 없이 계약한 웹툰 원작을 마지못해 검토하던 정인필름의 프로듀서 김수진(송지효)이 짜증을 섞어 원작에 타박을 놓는다. 하지만 ‘구여친’들과의 실제 연애사를 웹툰으로 그린 작가가 자신의 ‘구남친’인 방명수(변요한)란 사실을 알게 된 수진은 웹툰을 다시 읽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설렘과 흥분이 새삼스러워지는 현자타임이 찾아온다. 노트북을 탁 덮어버린 수진의 긴 한숨을 번역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정도가 될 테지. 그렇다. 대개는 의미 없다. 옛 남자의 연애 회고담에 언젠가 자신도 등장하리라 상상하는 달콤하고 씁쓸한 감정 따위가 먹고사는 데 무슨 영향을 미치겠나? tvN 드라마 <구여친클럽> 이야기다.

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표의 사채 빚으로 회사는 망하게 생겼고 수진은 명수의 웹툰을 영화로 만들어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 한다. 게다가 웹툰에서 고양이, 여우, 암사자 캐릭터로 그려졌던 세명의 실제 구여친들이 영화사에 나타나 각자 다른 이유로 영화화를 반대하고 또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각색하길 요구하는 상황. 명수의 일방적인 회고담 속 그녀들이 지난 사랑에 관한 지분을 주장하면서 과거의 사랑은 더이상 과거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프로듀서인 수진은 그녀들을 설득해 영화를 진행하기 위해 실은 자신도 명수의 구여친이라 밝히고 부끄러운 비밀을 공유해 연대를 다진다. 명수에게 돈을 빌려줬고, 누드 크로키가 유출되었으며, 지나치게 집착하다 배신당했던 과거사를 윤색하느라 애쓰던 세 여자는 사귀면서 한번도 같이 자지 않았다는 수진의 고백에 경악하고 수진을 단번에 가장 불행한 구여친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들의 기묘한 연대는 자리에 늦게 합류한 명수 때문에 다시 박살이 난다. “사귄 적 없는데? 얘랑 나랑은 친구지. 절친!”

어쩌다 이런 착각이 빚어졌을까? 넉살좋고 다정한 명수의 성격이 오해를 샀나? 벤치 사인도 없이 혼자 도루하다 죽은 수진의 잘못일까? 연인이나 다름없는 친밀한 기억을 공유하는데도 그들은 어째서 연애가 아니었을까? 자연히 의문은 어떤 조건에서 연애가 성립하고 어떤 관계를 연애라고 부르는가로 이어진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운 좋게 타이밍이 맞을 때, 선언과 공표로 서로를 잠정적으로 상대에게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계를 연애라고 단정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흐리며 이전엔 의심하지 않던 것들에 줄줄이 물음표를 던지는 <구여친클럽>은 수진과 명수의 재회에서 시작해 구여친 4자 대면으로 이어지고, 또 이해관계가 얽힌 관찰자가 늘어날수록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합의된 거짓말에 파문을 일으키는 묘한 마음이 생생해진다. 사공이 많아지고 배가 산으로 갈수록 매력을 더하는 이야기에 홀딱 반해버렸다!

+ α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지난 사랑을 회고한다는 점과 순위를 매기는 대화에서 닉 혼비의 소설 <하이 피델리티>를 영화화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떠오른다. 물론 거죽만 슬쩍 빌린 것은 아니다. 때로 저들의 지난 사랑보다 훨씬 더 오래된 사랑 노래가 얹히며 쓸쓸함을 자아내는가 하면, 시끌벅적한 코미디를 비롯한 온갖 감정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삽입곡들 역시 이 드라마의 매력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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