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전통적인 무협을 표방하는 영화 <협녀, 칼의 기억>
2015-08-12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홍이(김고은)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이자 무술 스승인 맹인 자객 월소(전도연)의 손에서 자란다. 실력이 일취월장한 홍이는 무술 시합에 끼어든다. 시합의 주최자인 유백(이병헌)은 한눈에 홍이가 월소에게 사사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홍이를 미행한다. 유백은 홍이에게 자신이 입가에 두른 마스크를 셋 셀 동안 빼앗으면 실력을 인정하겠노라고 말한다. 홍이는 곧 유백의 마스크를 빼앗아 들고는 자랑스레 월소에게 간다. 홍이가 유백을 만났음을 알게 된 월소는 홍이에게 칼 한 자루를 내밀며 말한다. “이것은 네 아비를 벤 칼이다.”

액션 활극에 가까운 한국식 변형 무협영화들이 존재해왔지만 전통적인 무협을 표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협녀, 칼의 기억>은 용기 있는 시도다. 박흥식 감독은 고려 시대 송과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역이 활발했던 무역의 공간, 벽란도를 무협의 공간으로 상상한다. 이로써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영화의 기본 배경이 세팅된다. 유백이 머무는 궁궐은 앞선 공간과 대비되는 또 다른 무협의 공간이다.

영화는 무술의 차오르는 힘을 유백의 신분상승 욕망으로 치환해 보여준다. 유백의 상승과 대비되는 다른 축은 홍이의 성장하려는 힘이다. 상대적으로 차분하며 강건한 월소는 두 사람의 상승 욕망과 대비되는 수평의 축을 이룬다. 월소는 홍이와 유백을 이어주는 끈이자, 베는 칼이다. 대조적인 것이 서로 혼합되는 힘이 영화 내내 지배하는데 그것은 배우들의 액션에서도 그렇다. 액션의 순간마다 슬로모션을 비롯한 여타의 기술이 과도하게 혼합된다. 기술에 힘입어 비상한 속도감을 지닌 배우의 액션은 차라리 사극을 배경으로 한 게임 속 캐릭터의 그것처럼 보인다. 이는 액션의 쾌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감정선과 묘한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도 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에 이은 박흥식 감독과 배우 전도연의 세 번째 만남이다. 특히 <인어공주>와 함께 놓고 생각해볼 지점이 있는 작품이다. <인어공주>에서 어머니의 역사를 뒤따르던 전도연이 이제는 자신을 뒤따르는 딸을 지켜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홍이의 성장에 못지않은 월소의 성장 이야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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