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중년 남성과 어린 여성의 사랑 <우리가 사랑한 시간>
2015-11-11
글 : 김보연 (객원기자)

고등학교 교사인 키이스(가이 피어스)는 안정적인 직장과 화목한 가정 등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삶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혼 이후 포기한 음악 때문에 자신의 삶에 조바심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삶이 정체된 채 이대로 끝날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교환 학생 소피(펠리시티 존스)가 키이스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하면서 그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어린 나이에도 성숙한 분위기를 지닌 소피에게 키이스는 조금씩 마음이 끌리고, 어느 날 음악을 매개로 짧은 교감을 나눈 뒤 좀더 용기를 내어 접근을 시도한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2013년 작품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중년 남성과 어린 여성의 사랑,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그린 작품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많은 관객은 이미 영화의 시작과 전개, 끝을 대략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그런 ‘전형적’인 전개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다. 소위 불륜 관계인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끌리지만 결국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잘못을 저질러버렸다는, 그런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감독은 이야기의 전개에 새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의 색깔이 만들어지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가이 피어스와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대신 카메라가 개입해 그들의 미묘한 표정과 눈빛을 길게 보여준다. 이때 영화에는 여백이 발생하며 자연스럽게 관객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즉,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불안한 내면을 유추하며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비록 후반부의 몇몇 주요 사건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우연이 겹치거나 전개가 급해지며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절제된 연출과 연기를 통해 감정의 진폭을 크게 만드는 감독의 솜씨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2년 전 작품임을 고려했을 때 감독의 신작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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