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조각난 기억들을 찾아가는 이야기 <나를 잊지 말아요>
2016-01-06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잘나가던 변호사 석원(정우성)은 끔찍한 교통사고로 최근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가족도 친구도 잘 떠오르지 않아 늘 멍하게 지내야 하는 석원은 사고 후유증 상담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진영(김하늘)을 알게 된다.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둘은 이내 연인으로 발전하고, 석원은 잃어버린 과거를 떨치고 진영과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삶의 희망을 되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파편처럼 불쑥불쑥 떠오르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은 계속해서 석원을 괴롭히고, 결국 자신의 아픈 기억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조각난 기억들을 짜맞추어 이야기를 재구성하게 만듦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석원을 향한 진영의 알 수 없는 행동들도, 하나둘 드러나는 석연치 않은 석원의 과거 행적들도 가장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이 맞추어지는 영화 종반까지 설명이 유보된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끌었다가 풀어놓는 ‘결정적 한방’은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는 감독의 야심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꽤 강력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충격의 깜짝 쇼’를 위해 영화의 대부분을 억지로 끌어맞춰놓느라 인물들의 감정선이 죄다 헝클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기억을 잃었을 뿐 다른 모든 ‘기능’은 정상이라고 설정해놓았지만, 영화 속 석원은 감정조차 상실해버린 텅 빈 로봇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석원의 로맨틱한 대사나 행동들은 이야기에 스며들지 못하고 억지로 끼워넣은 광고의 한 장면처럼 오히려 영화를 불편하게 만든다. ‘비밀’을 간직한 탓이라지만 거칠고 들쭉날쭉한 진영의 감정도 이해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중심에 놓인 석원과 진영의 사랑의 감정이 잘 설명되지 않은 탓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마저 애써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촬영 여건 때문이었을 거라고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방향성 없이 오가는 인물들의 동선도 서울 지리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관객이라면 거슬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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