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 믿을 겁니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6-11-09
글 : 송경원

홍상수 감독의 18번째 장편. 한명의 여인과 주변의 남자들. <다른나라에서>(2011)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우리 선희>(2013)로부터 이어지는 플롯. 연남동에서 찍은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소개하는 데 이 이상 어떤 말을 더 보태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까지의 홍상수 영화가 그러했듯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언어를 통한 설명과 이해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화가인 영수(김주혁)는 친구들로부터 애인 민정(이유영)이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민정은 사실을 말하라고 다그치는 영수와 크게 싸운 후 연락을 끊는다. 영수는 민정이 그리워 찾아 헤매고 민정은 연남동 여기저기서 몇명의 새로운 남자들과 함께 목격된다. 민정을 다시 만난 영수는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 믿을 겁니다”라고 고백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이게 맞느냐고 반문한다면, 알 수 없다. 민정이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건지 쌍둥이가 정말 있는 건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긍정하는 유일한 가치는 나도, 당신도, 영화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른다는 사실 앞에 ‘무엇을’을 끼워넣느냐에 따라 영화는 매번 다른 길을 열어준다.

이번 영화에서 관객이 목격할 수 있는 건 매 장면의 솔직한 반응과 이에 따른 세밀한 감정 묘사, 그게 전부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근래 홍상수 감독의 작품중 가장 밝고 솔직하다. 일견 여성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차 보이는데 아마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알고 싶다는 욕심을 끼워넣지 않으며 솔직한 애정을 투영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은 막간극처럼 활력을 더하고 마음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대사는 누군가를 향한 연애편지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한 남자가 ‘나는 너를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니까 이해한다’에서 ‘나는 너를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는 상태로 나아가는 자기반영적인 기록이다. 다소 평면적이고 간소해 보이지만 절절한 어떤 감정만큼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떠도는 말을 무력화시키고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를 뭉개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언어의 힘을 활용하는 지점이 제목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란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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