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 얘기를… 네가 믿어줄까?” <가려진 시간>
2016-11-16
글 : 장영엽 (편집장)

열세살 소녀 수린(신은수)은 외롭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새아버지(김희원)와 함께 화노도로 터전을 옮겨 살아가고 있다. 공사장 일로 바쁜 새아버지는 집을 비우기 일쑤고, 홀로 남은 수린은 유체이탈에 대한 글을 SNS에 올리는 등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 그런 그녀의 삶 속으로 성민(이효제)이 들어온다. 그 역시 수린처럼 친부모를 잃은 고아다. 의지할 곳 없는 소년, 소녀는 금세 단짝이 된다.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암호로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누구도 알지 못한 장소를 그들만의 아지트로 삼는 등 수린과 성민이 함께 구축한 세계는 뭇 십대 소년, 소녀들의 세계가 그렇듯 수많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민은 친구들과 함께 공사장 발파 현장을 보러가기로 하고 수린도 따라나서게 된다. 이들은 우연히 들어가게 된 동굴에서 신기한 알을 발견한다. 수린이 잠시 한눈을 파는 새 성민을 비롯한 소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정체불명의 성인 남자(강동원)가 나타난다. 수린이 성민과 함께 썼던 비밀일기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수린 앞에 나타나 자신이 성민이라고 주장한다.

엄태화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가려진 시간>은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문 판타지 장르의 영화다. 호기심 가득한 십대 소년, 소녀들이 기묘한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구니스> <스탠 바이 미> 같은 일련의 어드벤처영화들을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모험이 현실 세계에서의 실종 사건과 맞물리며 한층 어두운 정서의 영화로 완성됐다. 특히 배우 강동원의 내레이션과 더불어 펼쳐지는 정지된 시간에 대한 묘사(특수효과 제작 전문업체 매크로그래프가 CG를 맡았다)는 시각적으로 참신하고 근사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충돌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정말로 정지된 시간에 갇혀 있었을까, 아니면 소녀를 꾀기 위해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걸까. 순수함과 위협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들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이 매력적인 작품. 수린을 연기한 아역배우 신은수는 과연 올해의 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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